학술
고대 그리스의 음악 정신: 인간 본능과 충동의 찬미
현상들의 도구이자 상징인 언어는 결코 음악의 가장 깊은 내면을 외부로 돌려놓을 수 없으며, 음악을 모방하는 즉시 언어는 음악과의 피상적인 접촉 상태에만 머무르게 된다.
니체 철학은 고대 그리스 음악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서 구체화한다. 위의 인용을 보면 니체가 음악을 본질 면에서 언어와 구분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언어 즉 논리적 개념들의 조합은 모든 세계에 드러나는 현상들을 표현하는 도구이며 상징일 뿐이다. 세계 운행의 목적과 본질을 담고 있는 매트릭스(모체)는 ‘음악’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대 그리스 음악의 정신’이 세계와 인간의 비밀을 간직한 원천이라는 말이다. 보통 서양철학이라고 하면 언뜻 개념들의 논리적 구성에서 출발하는 지식의 역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20대 중반 고전문헌학자 니체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과 감각을 통해 음악 정신이 언어 논리의 차원을 앞선다고 새롭게 규정한다. 1872년(당시 28세) 앞의 책 『음악의 정신으로부터 비극의 탄생』을 출간했을 때 니체의 사상은 고전 문헌학도 아니며 철학도 아니라는 혹평을 받았다. 이 사실로 미루어 짐작하면 그의 시도는 한마디로 지적 도발이었으며 새로운 서양 지성사의 흐름을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인용을 더 설명해 보면, 언어의 기능은 논리적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본래 목적은 아니다. 음악의 정신을 모방하는 것이 언어의 운명이다. 하지만 음악 정신에 접근하는 순간 아무리 수려한 언어적 기호를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음악의 본래 정신을 담아낼 수는 없다. 음악가의 출중한 영감으로 천재적 기질을 발휘하여 위대한 작곡을 했다고 하더라도, 니체가 보기에, 그것은 음악 정신의 피상적 상징일 뿐이다. 그 이유는 기호든 부호든 표현 수단으로서 언어에 내려진 근본 한계 때문이다. 하지만 니체는 언어의 근본 한계가 부정적이라고 간주하지는 않는다. 니체 자신도 자기 사상을 수많은 언어적 개념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어의 논리적 사용 기법이 아니라, 얼마나 음악 정신을 의식하고 반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니체에게 고대 그리스 음악은 장르로서 음악이기 이전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 무질서한 본능과 충동, 욕정과 경악, 공포와 전율 등 인간 내면세계와 생존 욕구를 지배하는 욕망을 숨김없이 담을 수 있는 모암(母巖)이 음악이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 음악에 대한 남다른 통찰로부터 니체는 기타 철학자와 구별된다. 니체가 음악 정신을 깊이 이해하는 데는 그가 자란 배경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루터교 목회자 집안에서 자라며 음악을 공부한 니체는 십 대에 교향곡을 작곡할 만큼 음악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 고대 그리스 음악 정신에서 세계와 인간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에서 음악의 본류를 찾았기 때문에 기독교의 창조주 하나님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죽음’을 선언하게 된다.
니체는 앞서 소개한 그의 처녀작 『음악의 정신으로부터 비극의 탄생』에서 고대 그리스 음악 정신에 충실했던 서정 시인을 분석한다. 그리스 파로스 태생의 전사이자 시인인 아르킬로코스(Archilochus, 주전 680-645)이다.(49-61 참조) 이 서정 시인은 처음으로 신화와 전설의 서사시에서 탈출한 인물이다. 개인의 자유와 인생의 고뇌를 엘레게이아(elegeia)나 이암보스(Iambos)[모든 운율 가운데 가장 안정성 있고 무게 있는 운율] 운율(韻律)을 통해 호방하고 신랄하게 노래했다. 니체는 이 서정 시인을 당시 정형화된 영웅 찬가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 음악 정신에 가장 충실했던 자로 소개한다. 언어의 도구성과 상징성을 철저히 자각하고 인간의 운명과 세계의 법칙을 대변했던 인물로 보았다. 니체의 표현을 사용하면 “도취 속에서 진리를 말하는 예술”(48)을 구가했던 시인이다.
인간 본능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의 음악은 미학적 형이상학에 토대를 형성한 곳이다. 니체의 평가다. “디오니소스적 예술가로서 근원적 일자, 그리고 그의 고통 및 모순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서 이 근원적 일자의 모상(模像)을 음악으로 만들어낸다.”(51) 디오니스 잡신의 이미지가 인간 본능의 대명사라고 볼 때 고대 그리스 음악은 다름 아닌 디오니소스 찬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디오니소스적 음악가는 어떤 영상도 없이 단지 근원적 고통과 이의 반향 자체”(52)가 된다. 이처럼 니체의 정신적 고향은 언어의 논리적 법칙이나 이성적 판단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다. 어떤 예술(음악) 정신에 기반을 둔 표현인가가 중요하다. 그 이유에 대해 니체는 이렇게 강조한다. “왜냐하면 오직 미적 현상으로서만 실존과 세계는 영원히 정당화되기 때문이다.”(56) 미적 현상으로 정당화된다는 말은 언어의 논리적 법칙으로는 인간과 세계를 규정할 수 없다는 단정이다. 니체는 언어로 표현되기 이전의 세계에 주목했으며 그 세계를 고대 그리스인들은 디오니소스 잡신 신화와 연관된 자신들의 민요 음악을 통해 드러냈다고 본다. 니체의 말이다. “우리는 디오니소스적 조류를 항상 민요의 토대이자 전제 조건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민요는 (……) 음악적인 세계 거울이며, 이제 자신에게 대응하는 꿈의 현상을 찾아 이 현상을 문학 속에서 표현하는 근원적인 멜로디다.”(57)
니체 사상의 고향인 고대 그리스 음악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충동의 세계를 숭배와 찬가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렇게 니체를 따라 고대 그리스에서 그 정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모든 서양 사상은 그 세계에 빠지는 만큼 인간의 욕구와 충동의 주관자인 창조주 여호와의 존재에서는 더 멀어질 뿐이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2-24)
<233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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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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