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인간 본능과 예술의 본질: 잡신 신화(神話)에 목숨을 걸다
인식은 행위를 죽인다 (……) 예술이 구원과 치료의 마술사로 다가온다. 오직 예술만이 실존의 공포와 불합리에 관한 저 구역질 나는 생각들을 그것과 더불어 살 수 있는 표상들로 변화시킬 수 있다.(67); 지혜의 칼끝은 지혜로운 자를 향한다. 지혜는 자연에 대한 범죄다.(79)
니체에 의하면 인식(認識)은 인간의 삶을 근본에서부터 짓밟는 살인 도구에 불과하다. 니체의 철학방법론을 그대로 계승한 프랑스 현대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가 주장하는 ‘권력 지배와 무관한 지식은 없다(권력-지식론)’는 말처럼, 진리라는 미명으로 제시된 모든 정보와 지식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상호 지배를 가속화할 뿐이다. 대학입시가 학생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는다는 말은 강요받은 지식의 축적이 결국 친구와 자신의 삶을 황폐하게 하고 공멸을 초래하는 비극의 연속이라는 슬픈 진실을 품고 있다. 니체에 의하면 고도의 이성적 판단에 의해 가능한 지적 활동은 구역질 나게 하는 생각들이 삶을 고문하고 죽이는 사슬처럼 엉킨 것들이다. 언어(개념) 사용자가 정교한 논리적 법칙으로 다듬은 소위 진리 체계라는 것은 생존 본능과 욕구에 역행하라는 강요받은 답안지 자체다. 이 지식의 정답지는 인간의 본능과 본성에 충실하려는 것을 ‘악(惡)’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본능적 충동과 생존을 위한 모든 시도는 이미 정한 답지에 의해 ‘참/거짓’으로 난도질당한다. 이러한 진리추구라는 미명으로 인간의 본능과 본성을 압살하려는 기독교 중심의 서양 지식 문화에 맞선 철학자가 니체다.
그리고 니체는 인간의 진리 추구 욕구가 망쳐버린 본능과 충동과 본성 중심의 인간의 삶을 복원하고자 그 대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디오니소스 송가의 사티로스 합창단은 그리스 예술의 구원하는 행위다.”(67) 니체의 저술이기도 한 ‘디오니소스 송가(頌歌)’는 말 그대로 술의 신, 충동의 신, 도취의 신, 광란의 신, 비극을 운명으로 사랑하는 신을 찬양하는 노래다. 여기서 금기(禁忌)는 개념적 논리로 인간의 본능과 본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 금기의 엄격함은 마치 언어의 논리적 법칙으로 한 수 가르치려는 자를 그냥 두지 않고 디오니소스 잡신의 사제단(司祭團)이 나와 찢어버리는 경우에 비유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반드시 예술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 사티로스(Satyr)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괴물 잡신이다.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염소, 그리고 뿔이 나 있다. 물론 디오니소스의 종놈이며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고 항상 색(色)을 밝히고 성기가 발기된 잡신 형상으로 그려놓고 있다. (너무 선정적이라 염소 다리만 그리거나 수건으로 덮은 것으로 그린다.) 성경 구절을 인용해 자신의 말년 회고록 제목을 붙인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에서 니체는 ‘나는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제자이다, 나는 성인이 되느니 차라리 사티로스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니체는 자신의 철학에서 이 ‘사티로스’를 통해 철학적 이성과 종교적 제도와 법이 억압하고 유린하는 인간의 본성과 본능을 해방시키고자 했다. (영어 번역 성경 KJV은 이사야 34장 14절 ‘숫염소’를 ‘Satyr’로 번역했다.)
인간 본능과 본성, 욕구와 충동의 대명사인 사티로스 합창단은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대한 강렬한 집단적 표출을 상징한다. 이런 점에서 니체는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사티로스 합창단을 극찬한다. 사티로스 연출에서 인간의 본성은 정답지를 얻은 듯이 기뻐한다. “인간의 원형이었고, 인간이 가진 최고의 그리고 가장 강렬한 감동의 표현이었다. 그는 신이 가까이 있는 것에 황홀해하는 감격한 열광자, 그 안에서 신의 고통이 반복되기 때문에 함께 괴로워하는 동지, 자연의 가장 깊은 가슴에서 나오는 진리의 예고자, 그리스인이 흔히 외경적인 놀라움으로 바라보곤 했던 자연의 생식적 전능의 상징이었다. 사티로스는 어떤 숭고한 것이었고 신적인 것이었다.”(68) 이러한 본능에 철저하게 충실하는 사티로스 합창단원에게 논리적 판단과 합리적 지식과 진리/비진리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술에 취해 온갖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며 동물인지 인간인지 그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유일하게 대변하는 곳이 사티로스 합창단이다. 이 합창단을 빼고 그리스 예술 특히 비극을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이 그리스 예술이 아리안인으로 상징하는 유럽인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된다. 이것을 왜곡한 자들을 니체는 언어의 논리적 법칙과 도덕적 규율을 만들어낸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서구 기독교라고 지목한다. 가령 니체가 “그[사티로스-필자 주]는 자연의 모사이며 자연의 강력한 충동의 모사다. 그렇다. 그는 자연의 상징인 동시에 자연의 지혜와 예술의 선포자다. 음악가와 시인, 무용가와 예언자가 합쳐 한 사람이 된 것”(74)이라고 말할 때, 니체에게는 인류 시조는 아담이 아니라 바로 사티로스다. 20대 중반 젊은 철학자 니체는 루터교 집안의 율법 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사티로스의 합창단 일원이 됨으로써. 그리고 그 합창대에서 서양 기독교의 ‘신은 죽었다’고 노래하게 된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딤전 1:4);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7)
<235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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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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