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쇠(퇴)함
子曰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
자왈심의 오쇠야 구의 오불부몽견주공
『논어』 「술이」의 계속이다.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말했다. “심하도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되었도다. 내가 다시 꿈에 주공을 보지 못했도다.”
‘주공(周公)’은 성이 ‘희(嬉)’이고 이름은 ‘단(旦)’ 또는 ‘숙단(叔旦)’으로 주나라 문왕의 둘째 아들이다. 문왕의 첫째 아들이자 형은 무왕(武王)이다. 무왕은 문왕의 뒤를 이어 상나라(은나라)를 정복하고 왕이 되었다. 하지만 통치 2년 만에 병으로 죽게 되었다. 무왕은 자신의 아들인 성왕(成王)을 후계자로 세웠다. 주공은 어린 조카인 성왕을 도와 섭정을 하였다. 7년 후에 주나라가 안정이 되자 주공은 조카에게 정권을 물려주었다. 그는 이러한 공로로 노나라의 제후로 봉해졌으나 봉지에 가지 않고 주나라의 안정을 위해 열심을 다하였다.
주공은 주나라의 예악을 제정하고 역경(주역)을 완성하였으며 주례(周禮)와 의례(儀禮)를 정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례는 주나라의 민사행정과 농업과 상업, 통치 등과 관계된 저술이었고, 의례는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각종 예식과 귀족이 지켜야 할 관혼상제 등과 관계된 저술이었다. 공자는 주공이 성왕이 어린 조카임에도 불구하고 신하로서의 예를 다하였고, 주나라의 통치를 안정화시키고 예악을 정비하고 문물을 발달시킨 역할에 탄복하였다. 한 마디로 공자에게 주공은 그가 본받아 따라야 할 성인이었다.
지금 공자가 ‘쇠하였다’고 한 것은 이미 자신이 늙었음을 표현한 말이다. 아마도 공자는 젊었을 때에 주공을 따라 살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던 것 같다. 하지만 주공의 모습을 따라 공자도 살았을 텐데 스스로 판단하기에 주공만큼은 살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현재 공자가 살고 있는 당시의 노나라의 예악과 정치상황이 주공이 주나라를 위해 활약했던 것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고 부실하다는 인정이다. 자신이 이미 심히 쇠하였다는 것은 자신의 보낸 세월이 헛되었음을 한탄한 것에 다를 바 없다.
지금 다시 꿈에서도 주공을 볼 수 없다는 것은 현재의 공자는 주공이 실천했던 성인으로서의 삶의 실천에 대한 자신감의 상실을 인정한 것이다. 모르긴 해도 공자에게서 주공을 닮겠다고 하는 마음조차도 다 없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늙었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쇠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주공을 따르겠다는 마음조차 없다면 당연히 이러한 한탄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몸의 노쇠함이 마음의 의지를 그대로 따라 할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마음은 있지만 이제 노쇠하였기에 실천할 수 없다는 자기 고백이었다.
공자의 이 고백은 그리스도인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돌아보게 하는 훌륭한 사례가 된다고 하겠다. 그리스도인에게 나이가 들어감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흰 머리는 노인의 영광이다. 겉 사람은 후패, 즉 낡아지고 쇠약해지지만 속사람은 새롭게 된다는 것이 말씀의 증언이다(고후 4:16). 그래서 늙는 것을 낙심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리스도인이 쇠약해질 때를 생각해서 젊을 때에 더욱 많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하며 그 역량을 확장해둘 필요는 있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젊을 때이든지 늙은 때이든지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여 의지하는 마음을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고 넓게 해두자. 우리는 쇠하지만 하나님은 쇠하시지 않는다. 힘을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오 힘을 거두어 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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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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