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공자의 제자 사랑
子在陳 曰歸與歸與 吾黨之小子 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
자재진 왈귀여귀여 오당지소자 광간 비연성장 부지소이재지.
논어 5장 공야장의 계속이다. 그 해석은 이렇다.
공자가 진나라에 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돌아가야겠다! 돌아가야겠다! (우리) 제자들은 뜻은 크지만 (매사를) 소홀히 하고 (겉으로는) 빛나는 문체를 이루었지만 (그것을) 베어서 바르게 할 줄을 모르니까.”
공자가 천하에 도를 펴기 위해서 중원의 나라를 돌아다닌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그가 꿈꾸던 것은 아마 ‘생이지지’(生而知之)자들을 만나서 도를 알게 하여 그로 하여금 천하를 공정하게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공자는 이렇게 천하를 찾아다닌다고 하더라도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솔직히 그는 자신이 도를 위해 어느 나라에서도 쓰임을 받을 수 없음을 알았다. 이 사실을 알고 난 후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먹고 세상의 상황을 이렇게 탄식하고 있다(道不行而思歸之歎也, 도불행이사귀지탄야).
공자는 자신의 문하생들이 ‘생이지지’의 수준에 있지 않은 자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자질이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인이나 예에 대하여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는 마음은 대단하였다. 의지도 높았다. 다만 그 높은 의지를 구체적으로 실천해내는 데서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그들은 멋지게 큰소리치면서 예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경험이나 타인의 경험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하고 가르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재(裁)는 옷감을 가위로 잘라 맞추듯이 ‘베어서 바르게 하는 것’(割正, 할정)을 말한다. 요샛말로 하면 공자의 제자들은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는 것처럼 큰소리는 칠 수 있어도 그것을 잘게 자르고 바르게 해서 결실을 맺는 실천, 곧 마름질을 할 줄 몰랐다.
공자는 주류천하를 통해 천자라거나 제후 등이 온갖 권모술수를 부리며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급급해할 뿐 용기를 내어 도의 길로는 전혀 나서지 못할 인물들임을 알게 되었다. 반면에 그의 제자들은 비록 생이지지자는 못되지만 광사(狂士, 뜻이 높은 선비)로서 의지가 대단하였다. 그들은 충분히 자신과 함께 도로 나아갈 수 있는 자들이었다(以爲狂士志意高原 猶或可與進於道也 이위광사지의고원 유혹가여진어도야).
하지만 공자가 지속적으로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면 그들이 배우는 중에 중용을 지키지 못하거나 바름을 잊어서 이단으로 잘못 빠질 수도 있었다(其過中失正而或陷於異端耳 기과중실정이혹함어이단이). 그래서 공자는 제자들에게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로 돌아가기로 했다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포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왕이나 제후들을 이용한 위로부터의 개혁 대신에 제자들을 바르게 가르치면서 도를 펼치겠다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는 철저하게 제자들과 더불어 도의 길로 나아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 공자의 제자 사랑이었다.
공자의 이러한 자세가 우리나라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의의는 무엇인가. 현재 우리나라의 목회자들은 대부분이 대형교회를 이루어서 많은 회중들의 인정을 받으며 소위 멋지고 화려하게 목회하고자 한다. 이것으로는 그 교회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도를 펼칠 수가 없다. 뜻만 크고 그 구체적 실천의 측면에서는 많은 것이 결핍되어 있다. 기본 신학 사상,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 그 구체적인 실천 생활양식 등이 부족하다. 원대한 꿈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대형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 역시 실상 그 교회에 대하여 자신들이 섬기는 일이 없는데도 대단한 무언가가 있는 듯이 착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필요한 것은 목회자가 자신이 먼저 원대하고 고원한 믿음의 실천행위를 꿈꾸면서 실제 삶 속에서 말씀의 선을 넘지도 어지럽히지도 않으면서 매사에 베어내고 바르게 실천해 가는 것이다. 그 후에 성도들에게 어떻게 자신의 삶 속에서 잘못된 것을 베어내고 바르게 살아야 할 것인지의 말씀의 적용 단계 곧 마무리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진정 목회자는 교회건물이나 겉으로 화려한 목회를 꿈꾸는 대신에 성도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과 함께 말씀을 따라 건전하고 신실하게 생활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목회자의 성도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스도인이여!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비전은 원대하게 가지되 주변 사람들과 함께 온갖 일들에서부터 잘게 베어내고 바르게 하여 말씀 따라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가자. 이것이 목회자의 성도에 대한 사랑이자 모든 그리스도인이 실행해야 할 제자 사랑이다.
대한의 선한 그리스도인들이여!! 제자들을 인정하고 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기 위해 그들에게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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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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