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4-05-22 09:5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예순. 기독교의 로마제국 국교화 과정,교황 권력의 절대화 날조 과정


콘스탄티누스(Flavius Valerius Constantinus, 주후 272-337) 황제는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인한 황제다. 그뿐 아니라 로마에서 순교했는지 명확히 확인할 수도 없는 베드로를 위해 로마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세워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황제의 업적 이면에는  단지 자신을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만이 아니라 다른 야심이 있었다. 황제는 자신을 로마제국 대제사장 곧 ‘최고 사제(司祭)’(폰티펙스 막시무스, Pontifex Maximus)로 여겼다. 세속의 모든 통치권은 물론이고 종교적 권력도 차지해야 한다는 심산이었다. 폰티펙스 막시무스라는 호칭은 다신교를 신봉했던 고대 로마에서 최고 사제를 칭했다. 콘스탄티누스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기독교 최고 사제의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자신과 가족을 포함해 그리스도인의 ‘매장지’를 준비하는 것이 최고 사제로서 자신의 임무로 여겼던 것이다. 그 예로 콘스탄티노플에 세운 12사도 매장교회(burial church), 예루살렘에 세운 성묘교회(sepulchre church), 로마에 세운 6개의 장례교회(funeral)가 모두 무덤과 관련된 성당들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이 모든 성당들은 순교자를 기념하는 교회 가까이에 두고 있다. 왜냐하면 일반 신도들이 순교자의 공로에 의존해서 기도하면 순교자들의 공로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폰티펙스 막시무스 호칭은 주후 380년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삼는다는 칙령을 내리면서 황제의 권위에서 분리된다. 그리고 주후 382년 서로마 황제 그라티아누스(Gratian, 재위 367-383)가 폰티펙스 막시무스 칭호를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칭호의 포기는 로마제국의 종교적 권위가 로마 가톨릭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이제 로마 교회의 최고 수장(Supreme Pontiff)은 로마 주교가 차지하게 되었으며, 폰티펙스 막시무스는 로마 감독의 최고 지위를 보장하는 명칭이 되었고, 나아가 로마 황제의 영혼도 로마 주교가 관할하면서 로마 총대주교는 (하나님 아버지처럼) 모든 신자들의 아버지인 ‘교황(Pope)’이라는 최고 권력의 명성을 차지하게 된다.

폰티펙스 막시무스라는 최고의 종교권력에 대한 탐욕은 서로마 황제가 그 칭호를 내려놓을 무렵 살상을 야기하는 사건으로 드러난다. 로마 가톨릭 37번째 교황 선출 과정에서 다마수스 1세(Damasus, 366-84 재위)의 지지자들과 우르시누스의 지지자들이 물리적으로 충돌한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에서만 약 137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황이 되려는 탐욕이 지지자들 간의 충돌을 야기했으며 이 폭력 사태는 로마 전역으로 확대되어 수백 명이 죽고 죽이는 살육전으로 번졌다.(453 참조) 교황 다마수스 1세가 정적들에 대해 직접 살해를 명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 충돌 자체는 황제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정적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일과 큰 차이가 없다.

이러한 살상의 오점을 덮기 위한 것이었을까? 교황 다마수스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사본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는가 하면 많은 순교자 기념 성당을 건축한다. 다마수스는 성 제롬(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7-420)을 전폭 지원하여 중세 유럽 라틴어 표준 성경 번역본인 ‘불가타 성경(Vulgate)’을 번역하게 한다. 이 번역은 후에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Council of Trent)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식 성경으로 공인된다. 또한 그는 여러 성당과 순교자 기념 성당을 건축하면서 특히 로마의 카타콤베(지하 묘지)를 정비하여 순교자들 무덤을 보존하는가 하면 로마를 기독교 순례 도시로 탈바꿈하는 데 비상한 관심과 큰 공을 들였다. 역사가 맥클로흐는 다마수스의 로마 성시화 프로젝트를 이렇게 정리한다. “그들은 초기 기독교 로마에는 실제로 별것 없는 것들에 많은 것들을 세세하게 덧붙여 그 장소들을 중요하게 만들었다.”(454)

또한 다마수스의 종교 권력에 대한 야심은 베드로를 로마 교회의 제1대 교황으로 만드는 작업으로 드러났다. 베드로가 단지 로마 가톨릭의 설립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 16장 17~19절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도록 의도적으로 곡해하여 베드로를 제1대 감독(후에는 교황)으로 날조한다. 그 왜곡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보다 우위에 있으며, 천국 열쇠는 오직 베드로만 받았고, 그 후 베드로가 그 열쇠를 로마 감독에게 주었으므로 로마 감독은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는 교황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다마수스는 교황 체제가 작동할 수 있는 로마 가톨릭의 행정 체계를 다방면에 걸쳐 정비해 놓았으며, 향후 교황권의 절대권력화를 확정하고 로마 가톨릭이 향후 천 년 동안 영화와 부패를 일삼도록 견고한(?) 준비를 해 놓았다.



<258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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