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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에서 전하는 소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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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실업률의 고통을 겪고 있는 남아공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이유로 외국인들을 무차별로 죽이거나 집단 구타하여 쫓아내는 ‘제노포비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어 민주화가 실현된 지 20주년이 되어 기념식을 치렀지만, 그가 외치던 ‘자유’와 ‘평등’은 오직 일부만의 것이 되어버린 것인지 곳곳에선 시위와 폭동이 끊이질 않는다.
이러한 극심한 현실을 가까이 접하며 필자는 지난 호에 이어 사경회(EQUIP Young Adult Con-vention)에서 진행되었던 분반 성경공부(워크숍)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필자가 이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 이유는 이들에게 성경공부는 순간의 위로와 허한 웃음으로 극한 현실을 잊는 도피수단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 적극적인 현실의 개혁 수단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성경공부 교재는 네 단계로 구분되어있었다. 사경회에 처음 참여한 사람은 1단계의 모임에 참여하고 차례로 네 번째 참석한 사람은 4단계의 분반으로 이동하여 모인다. 필자는 처음 참석했기에 1단계에 해당하는 성경공부 교재를 받았고 9명의 친구들과 함께 한 조가 되었다.
‘성경해석의 원리’(Principles of Biblical In-terpretation)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5강의 분반 성경공부는 성경 전체를 통일성 있게 읽어 나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주어진 짧은 교재에 많은 고민의 흔적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성경을 지켜내려는 저자의 마음이 교재 속에서 느껴질 때마다 필자는 교회학교 교육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 수업 시간, 리더는 우리에게 성경공부의 중심 본문인 ‘히브리서 12장 18-29절’을 반복해서 읽게 했다. 반복해서 읽으며 반복되는 단어들, 접속사들, 강조어 등을 찾아 밑줄을 긋고, 색깔 펜을 칠하고, 모르는 단어에는 물음표를 치는 등의 작업을 했다. 본문 내용이 처음 접하는 이들에겐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설명이 없이 그저 읽고 또 읽게 하였다.
둘째 시간이 되자 리더는 교재에 따라 앞서 읽은 본문에 대해 배경(context)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성경 본문에 대한 장르적인 접근으로부터, 역사적 접근을 거쳐, 신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가르친다. 특히나 신학적인 접근은 언약신학(Covenant Theology)을 활용하여 본문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엮이게 되는지를 고민하도록 가르치며,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을 활용하여 본문 속에 등장한 다양한 개념들이 어떻게 함께 맞물려 점진적으로 등장하고 있는지를 고민하도록 가르친다. 다소 어려운 주제였지만 이 시간을 통해 학생들은 성경이 통일성과 연속성이 있다는 것과 본문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그 배경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원리적으로 배우고 본문을 이용해 연습을 해보았다.
배경에 대한 접근에 이어 세 번째 시간에는 내용에 대한 구조적 접근을 다루었다. 해당 본문이 어디에서 단락이 나뉘어야 되는지를 토론하고 단락 간에 주제가 어떠한 흐름으로 연결되는지 그리고 해당 본문의 총체적인 핵심 주제가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훈련을 한 것이다. 이렇게 공부를 해가며 학생들은 스스로 성경을 읽어나가는 방법과 더불어 히브리서 본문의 내용을 통해 옛언약과 새언약의 관계, 그리스도의 사역 등을 동시에 깨달아 갔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본문에 대한 답을 바로 주지 않고 숙제와 토론을 통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고민하게 만듦으로써 성경을 스스로 읽어내는 방법을 터득하게 유도하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정도까지만 지켜보면서도 필자는 교재를 구성한 저자의 마음이 느껴져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가 교회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밤새워 고민하고 교안을 만들어 시도했던 성경의 구조 교육을 지구 정 반대편의 이들도 치열하게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성경개론을 간절히 원하는 그 익명의 저자의 외침이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육신에 사로잡혀 분쟁과 투쟁만을 일삼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귀한 시대적 소명을 주신 것이란 생각에 기쁨과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 분반공부 과정의 하이라이트는 이게 아니었다.
네 번째 시간이 되자 주제는 적용으로 넘어갔다. 우리가 가진 개론의 큰 그림이 없는 이들이 히브리서 본문을 가지고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점을 찾을지 매우 궁금했던 필자는 다시 한 번 고집스런 편견을 반성해야만 했다. 이들이 말하는 적용은 필자가 오해한 도덕 윤리적인 강요가 아니라, 본문이 말하고 있는 핵심 주제를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각자가 관심이 있는 가상의 대상(예, 유년부, 남자청년들, 미혼모 등)을 선정하여 어떤 방식의 접근으로 이들에게 이 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에 대한 토론을 하였다. 그 후 숙제로 주어진 것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가상의 대상을 정한 후에 이제까지 공부한 히브리서의 말씀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1시간의 성경공부 포맷을 구성해 오는 것이었다.
이날 밤 대부분은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청년들이 밤새 노느라 못 잤겠지’라고 생각 들겠지만, 청년들은 모두에게 주어진 이 숙제를 하려고 새벽까지 깨어있었다. 남에게 말씀을 가르치려면 자신이 더욱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기에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소스들(연구서들, 주석, 다양한 번역본들)을 모두 펼쳐놓고 밤을 새워 토론하고 가상의 교사로서 자신을 준비한 것이다. 사경회의 마지막 밤, 말씀과 더불어 때론 웃고 때론 진지하며 더불어 즐거워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필자는 벅찬 가슴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교성적보다, 영어수학점수보다, 심지어 태권도학원보다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인 성경공부가 이토록 아름다운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니... 필자는 성경을 중심으로 한 교회교육에서 다시 한 번 희망을 보았다.
분반 공부의 마지막 시간이 되었다. 이 시간에는 밤새 준비한 가상의 성경공부 교실이 열리는 시간이었다. 유아교육과에 다닌다는 한 친구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대학 신입생이던 형제는 또래 친구들을 대상으로, 필자는 과거에 봉사했던 교회학교 고등부 학생들을 떠올리며 고등부용 성경공부교실을 준비해 발표했다. 그중 교회가 없는 시골에서 온 친구가 자기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공부를 발표하고 소감을 나눌 땐 우리 모두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이렇게 분반 공부는 마무리 되어갔고 이 귀한 학생 성도들은 5일간의 빡빡하고 즐거운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말씀을 듣는 자에서 말씀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이큅’(Equip:장비를 갖추다, 사경회 이름)되어 갔다.
필자는 제노포비아가 근방에까지 퍼졌다는 소식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지난 5일간의 여정을 돌아보았다. 이들이 분열과 투쟁으로 얼룩진 남아공의 암담한 현실의 벽을 대하며 택한 도전 방식은 무엇이었나? 만인을 죽일 법한 총? 만인을 먹여 살릴 법한 수억의 달러? 아니다! 이들이 택한 것은 오직 살았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엡 6:10-11)
변도근 (전 장안중앙교회 교회학교 교사 / 남아공 스텔렌보쉬 대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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