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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에서 전하는 소식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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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대학 4학년 시절, 끊임없이 몰려드는 기독교와 신에 대한 질문들을 억지로 짓눌러가며 발버둥 치던 어느 날, 필자는 포항의 작은 교회에서 만난 전도사님과 성도님들로 인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부당함과 불합리함이 판을 치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과연 신은 정의로운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이 문제는 끊임없는 기도와 부단한 선행으로도 해결되지 못했다. 당시 신의 정의와 사랑에 대해 질문만이라도 공감해 줄 지도자를 찾았었지만, 필자에게 주어진 선물은 뜻밖에도 성경 전체를 통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지식이었다. 필자의 신관을 핵폭탄처럼 흔들어 놓았던 ‘성경신학’은 왜곡되었고 사악했던 내면의 가치관을 꾸준히 변화시켜 가기 시작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선생님들과 더불어 교사로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가운데 시나브로 논리적으로뿐 아니라 경험적으로도 말씀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셨다.
이러한 확신 가운데서 성경을 중시하고 성경을 성경대로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 in Stellenbosch)를 만나게 해주신 것은 은혜였다. 필자는 말씀의 힘을 믿고 교사를 자원했고 초등부 3학년을 맡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번 호에는 짧게 경험한 크라이스트 처치의 어린이 교육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어린이 성경학교는 매주 주일에 열리는 어린이 성경공부와 금요일에 열리는 FAB(Friday After-noon Bible) 클럽이 중심이 되어 진행된다. 금요일에 진행되는 FAB 클럽은 아이들의 부족한 성경공부를 보충하는 역할을 하며 아이들에게 서로 어울려 교제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데 초점이 맞춰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린이 사역은 청년 사역에 비해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특히나 일관된 교재가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우리의 선생님들이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 만들어낸 사경회 학생용 교재가 수업을 진행할 때마다 그리워진다. 진행되고 있는 선생님들의 교재 개정작업과 가르칠 인재의 양성 그리고 앞으로 이뤄질 번역작업은 전 세계 교회학교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란 확신이 든다.
2.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 후, 초등부 고학년 학생들이 주말을 맞아 근처의 농장으로 캠프(Fired-Up Camp 2015)를 떠났다. 캠프의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여느 초등부 수련회와 다름이 없었다. 감사하게도 대학생 봉사자들 네 명이 추가로 지원사격에 나서서 모든 준비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캠프의 주제는 ‘요나서’였고, 교사들은 본문 내용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네 번의 강의와 게임, 스포츠 등의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게임과 찬양을 포함한 모든 프로그램이 성경 본문의 내용과 의미상 연결되도록 준비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필자를 상당히 고무시켰다. 짧은 기간이지만 아이들 생활의 모든 영역에 성경에서 발견해 낸 의미를 부여해 준 것이다.
3. 우리가 2박 3일간 묵을 농장에 도착해서 학생들에겐 약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학생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공을 가지고 뛰어놀기 시작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광경이지만 필자에게 다소 생소하게만 느껴졌던 이유는 우리나라의 어린 학생들의 문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공동체 문화를 지니고 있던 우리의 교회문화가 가족주의로 물들고 언제부터 아이들조차 휴대전화기로 게임에 열중하느라 옆 친구와 눈을 마주할 시간을 잃어버렸는지 이곳에서 어울려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니 위기감이 몰려들었다. 공동체 문화 없이 교회라는 공동체가 바르게 설 수 있을까? 근본 공동체인 성도의 무리에게 있어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바울이 못나디못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눈물 어린 충고로 사랑을 전한 까닭은 바로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 된 한 몸, 한 공동체라는 가치 때문일 것이다.
4. 성경공부는 ‘단체 성경공부 - 분반 공부 - 공부한 내용 발표’가 한 세트로 이루어져서 진행되었고, 특히나 분반 공부가 끝난 후 배운 바를 나누는 시간이 필자에겐 인상 깊이 남았다. 자유롭게 배운 바를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와 하찮아 보이는 질문이라도 진지하게 들어주는 교사들의 자세가 성경 본문에 대한 지식교육만큼이나 아이들의 진리 인식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았다.
<공부한 내용을 나누는 시간>
5. 저녁이 되어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선생님들과 사경회를 시작할 즈음 필자가 경험했던 밤이 떠올랐다. ‘어린이들은 분명 잠을 안 자려고 할 텐데. 여기에서도 한바탕 사투가 벌어지겠지.’
하루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선배 도우미들의 신앙고백(간증) 시간이었다. 모든 선생님들은 자신들이 신앙을 확신하게 된 이야기들을 어린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준비했고, 아이들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소파 주위로 몰려들었다. 대학생 교사들이 자신들의 신앙 여정을 말하기 시작하자 기대하지 못했던 일들이 펼쳐졌다. 젊은 선생님들을 동경하며 사랑을 받아온 아이들은 이들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고, 지루해할 거란 예상을 뒤엎고 하나같이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자기들과 같이 철없고 말 안 듣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웃으며 깊이 공감하는 것 같았고, 선배들은 그러한 모습들을 죄와 연결했고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마무리를 지었다 (캠프 전에 교사들이 모여서 내용을 이미 공유하고 발표의 방향을 정했다). 교사들은 신앙이 이론만이 아닌 우리 삶 전체를 움직여 가는 실제라는 것을 흥미롭게 가르쳐주었다.
<교사들의 신앙고백 중>
5. 질문이 이어지던 중 한 4학년 학생이 악의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남아공 사회 자체가 불안하다 보니 현실에 눈을 뜨게 된 아이들에겐 심각한 문제였다. 대화는 선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사회의 악에 대한 문제로 자연스레 넘어갔지만, 이 문제는 악한 현실을 직접 경험한 아이들에겐 이해시키기 쉽지 않은 문제였다.
질의응답이 이어지던 가운데 필자는 질문이 많은 고학년 학생들만을 데리고 따로 대화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욥기나 시편 등 성경이 악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깊이 빠져들었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의 중요성까지 설득해보았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문제의식을 지니게 된다는 것. 이것은 아이들에게 있어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는 ‘문제’가 아니라 ‘축복’이었다.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내 안의 선악 평가는 도전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 이것이 아이들의 빛나는 눈을 보며 깨달은 중요한 교육의 전제였다.
6. 캠프가 끝난 다음 주일 오전. 참가한 아이 중 네 명이 캠프에서 있었던 즐거웠던 일들과 배운 내용을 어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짧은 소감이었지만 아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할 때 대중들은 뜨겁게 호응했고 발표가 마치자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쳐준다. 성숙한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잘나가는 어른들이 많은 교회? 많은 일은 도맡아 하는 교회? 교육과 관련하여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 미성숙한 어린아이를 그리스도의 짐을 짊어질 성숙한 어른으로 키워내기까지 긴 시간을 인내할 수 있는 교회가 성숙한 교회라고.
지난 호에 잠깐 언급했던 시리아 선교사가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선교사는 내전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돌보고 있는데 보육원의 한 어린이에게 물었다고 한다.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선교사가 되거나 테러리스트가 되겠죠.”
깜짝 놀란 선교사가 무슨 뜻인지를 물었더니 그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저를 선교사가 데리고 가면 선교사가 되고, 테러리스트가 데리고 가면 테러리스트가 되겠죠”
변도근 (전 장안중앙교회 교사, 현 Christ Church 초등부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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