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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에서 전하는 소식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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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성도가 모여 진행되는 토론의 열기가 뜨겁다. ‘크레테’의 미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크레테’는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 in Stellenbosch)가 운영하는 학생 숙소를 말한다. 1999년 한 성도가 하늘나라에 가며 방이 5개에 달하는 큰 집을 교회에 기부했고, 교회는 이 집을 목회자들의 숙소로 사용해 오다가 학생 리더들의 공동체성을 기른다는 목적으로 학생들에게 개방했고, 지금은 리모델링을 거쳐 방 8개에 8명의 남학생이 거주하고 있다. 필자는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크레테에 살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고, 현재 8명의 청년들과 같이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작년 말 십 년 넘게 학생 리더를 양육하는 데 사용되던 숙소를 팔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교회건물을 신축하려고 하는 당회의 입장에서 크레테 판매는 목돈을 마련하기에 좋은 수단이었고, 당회는 이를 일방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공개토론회를 개최한 것이다. 토론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당회원들은 대부분 찬성을 주장하며 학생들을 설득하려고 했고, 학생들은 대부분 반대의견을 내세우며 당회원들을 설득하려고 했다. 이 토론의 과정에서 때론 목소리가 커질 때도 있었지만, 누구 하나 서로의 말을 막거나 무시하지 않았고, 긴 토론과정을 지켜보는 성도들 속에서 다양한 절충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긴 토론 끝에 크레테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판매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새로 교회건물을 지을 때 건물의 한층 전체를 ‘뉴 크레테’로 사용하여 지속해서 학생 숙소를 운영하자는 안이 대안으로 결정되었다.
크레테에선 무슨 일들이 일어나기에 성도들은 이 숙소를 끔찍이도 아끼는 것인가? 사실 크레테는 단순한 기숙사가 아니다. 크레테는 교회의 모든 학생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숙소뿐 아니라, 카페, 파티, 성경공부 등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정기적인 파티준비에 한창이다. 일명 ‘크레테 토가 파티’. 드레스 코드가 그리스인들이 입었던 ‘토가’여서 ‘토가 파티’라고 이름 지어진 이 파티는 크레테의 오랜 전통적 행사 중 하나로, 올해는 초신자들과 불신자들을 편하게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데 행사의 초점을 맞추자고 목표를 정했다. 이렇게 크레테는 학생들에게 있어 ‘평일 교회’와 같은 역할을 하다 보니 학생들에게 있어 교회보다 더 친숙한 공간이 되었고, 석 달째 이곳에 거주하는 필자가 보기에도 크레테는 크라이스트 처치의 교회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게 해주는 큰 원동력이었다.
그렇다면, 크레테의 내부에서는 어떤 일들이 진행되는가? 이곳에 거주하는 이들은 매주 목요일 학생 성경공부를 이끄는 리더들을 위주로 선발된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매일 자신들이 가르칠 성경 내용에 관해 토론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다. 한 예로, 이틀 전 밤엔 필자와 친한 친구 한 명이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는다. 내용인즉슨, 자기는 ‘결혼 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키스’가 과연 존재할지 의심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는 2년간 사귄 여자 친구와 키스도 한번 안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자 친구의 부모님과 친구들이 그 사실을 듣고는 남자친구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며 헤어지라고 부추긴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과 성도 간의 이성 교제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에겐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웃지 말자, 개인도덕과 율법에 갇힌 친구들이 아니다. 오히려 이 친구들의 교회와 사회, 그리고 성도에 대한 태도는 나이가 가장 많아 큰 형 역할을 하려고 했던 필자를 부끄럽게 할 때가 많았다. 이처럼 크레테 내에서의 개인별 교재는 분기별로 짝을 바꿔가며 깊은 교재를 나누는 ‘1-1’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또한, 매주 목요일 새벽엔 모든 크레테 구성원들이 모여 기도 모임을 갖는다. 기도회라고 해서, 통성기도를 한 시간씩 이어가는 그런 모임이 아니다. 매주 돌아가며 한 명씩 기도해야 할 중요 의제를 준비해온다. 실제 기도하는 시간보다,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가 중요하기에 8할은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토론하고, 1할은 기도시간에 투자하며 나머지 1할은 짝을 정해서 기도한다. 이번 주엔 크레테의 막내인 ‘나단’이란 친구가, 나이지리아와 수단에서의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당하는 상황을 영상과 자료를 통해 준비해왔다. 필자도 전혀 무관심 해왔던 상황이었는데, ‘보코하람’이란 이슬람 무장단체에 의해 나이지리아에서 최근 순교 당한 기독교인만 1만 명이 넘고 파괴된 교회가 1천 곳이 넘는다고 한다.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그곳 성도들을 위해 무엇을 기도해야 하며, 실제로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을지를 토론했다. ‘하나님의 섭리야’ 라는 말로 때우고 지나치기엔, 학생들은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핍박당하는 먼 나라의 형제들을 실제 친형제들의 고통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울이 이방인 교회들을 다니며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연보를 모아 도왔던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직접 도울 수 없을지 방법을 고민했다. 이것이 우리의 그 날 기도제목이었다. 이렇게 기도의 내용이 정해지면 학생들은 놓인 기도제목에 대해 한 사람씩 또박또박 간구한다. 기도는 원하는 사람만 하지만, 앞서 합의한 기도제목이 기도에서 빠졌을 땐 기도가 끝나도 그 내용을 언급하며 누군가 다시 기도한다.
며칠 전 한국에서 사진 파일 하나를 전송받았다. 중등부가 MT로 선교사들의 묘지가 있는 양화진에 다녀왔다며 선생님 한 분이 단체 사진을 보내주셨다. 필자는 사진을 보고 2011년 초, 5년 전 이맘때가 떠올랐다. 양화진은 필자가 처음 고등부 교사를 시작하여 1학년을 담임하게 되었을 때 중등부 졸업여행 및 신입생 환영회로 학생들을 데려간 곳이다. 그때 학생들은 순교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중에도, “언제 끝나요?”, “끝나고 뭐 먹어요?”, “에버랜드 언제가요?” 등등 철없는 질문들을 계속했고 중간중간 “킥킥”거리는 학생들을 보며, 필자는 속으로 ‘이것들을 데리고 3년을 가야 한다니...’라며 한숨을 쉬었었다. 이렇게 학생들과 삼 년간의 동고동락이 시작되었다. 서로 상처를 주고, 화도 내고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진리의 말씀은 이토록 달라 서로 간에 고슴도치 같던 학생들을 하나로 만들어주었고, 그렇게 말씀 공부를 중심에 두고 많은 시간이 흘러 모두 졸업을 하고 성인이 되었다. 그런데! 어제 받은 양화진 사진 속에 철없어 보이는 2016년도의 중학생들 옆에 그 당시 그토록 말 안 듣던 철부지 학생이 듬직한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정 선생님도 중등부 철부지들에게 동일한 질문을 받았겠지.
“언제 끝나요?”
새롭게 중등부 학생들과 동고동락을 시작하는 선생님께 더는 아무 도움도 줄 수 없고 주변 상황은 더욱 어려워가지만, 감히 이렇게 대답해주길 기도해본다.
“언제 끝나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끝내시면 끝낼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 28:20)
변도근 (전 장안중앙교회 교사, 현 Christ Church 초등부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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