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5-08-12 13:5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바르트, 자유주의 연속과 불연속 (2)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1 읽기 (14)


칼 바르트의 신학은 자유주의를 연속하는 것일까? 불연속하는 것일까? 자유주의는 ‘이성’과 ‘내주주의’이고, 칼 바르트 신학은 ‘계시’와 ‘초절주의’이기 때문에 불연속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많다. 참고로 정태홍 목사는 “전적 타자(Ganz Anderer)”로서 신의 초월성을 주장하는 바르트의 신학에 대해서 명백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우리는 칼 바르트의 신학이 자유주의와 연속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유주의와 칼 바르트, 현대신학에서 예수를 인간 예수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서철원 박사는 하강기독론(Christologie von oben(absteigende Christologie, 위로부터 기독론)과 상승기독론(Christologie von unten(aufsteigende Christologie), 아래로부터 기독론)으로 대조해서 설명했다. 자유주의와 칼 바르트는 모두 인간 예수, 아래로부터 기독론(상승기독론)이기에 동일한 연속 사상이다.

바르트는 자기 신학 체계를 제시하기 위해서 ‘교의(Dogma)’에 대한 개념에서 ‘교의학(Dogmatic)’으로 전환해서, 학문 훈련으로 변경했다.

『교회교의학』 I/1, §1. “교의학의 과제”에서 그 개념을 정립하고 있다. 1. 교회, 신학, 학문에서 교회의 학문인 신학을 일반영역의 학문 수준과 동일하게 놓았다. 그것은 계시 이해에서 그가 초월성을 강조하지만, 그 초월성은 이성에게 판단되는 사건(event)이다. 그래서 그가 초월성을 강조하지만, 내재성을 추구하는 계시 구조를 갖는다.

많은 연구자들은 칼 바르트와 에밀 브루너의 계시 이해에서, 에밀 브루너는 자연계시를 주장했고, 칼 바르트는 자연계시를 부정하고 특별계시를 주장한 것으로 착각한다. 1934년 브루너가 쓴 『자연과 은혜』(Natur und Gnade)라는 글에 대해서, 바르트는 Nein(『아니오』)라고 답했다. ※우리말로는 『자연 신학』으로 김동건이 번역해서, 대한기독교서회(2021)에서 출간했다. 브루너는 자연에서 신의 계시에 접촉할 것(Anknupfungspunkt)이 있다고 주장했다. 바르트는 그것을 부정한 것이다. 자연에서 신의 계시를 파악할 수 없다고 말하면 연속적일 것인데, 바르트는 러시아의 관혁안단에서도, 죽은 개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르트는 인간과 자연에게 가능성을 부정한 것일 뿐, 자연에서 계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통 교리(Dogma)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피의 구속 은혜에 대한 배려가 없다. 즉 Dogma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Dogma를 변경 훼손시켜 새로운 Dogmatic으로 유도한다. 그것이 교회, 신학, 학문을 동일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그것을 “그리스도교적 철학(Philosophia christiana)”이라고 했다. 우리는 바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교적 철학”을 “인문학적 신학”으로 바꿔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바르트는 신학을 ‘학문’의 범주로 포함시켰다(GG., 32). 그것은 바르트가 신학을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fides quaerens intellectum)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스콜라 철학은 이성과 계시를 조화시키려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스콜라 철학은 신플라톤주의의 도전에 대한 신학적 답변이어야 하는데, 융화를 추구한 것이다. 참고로 어거스틴(Augustinus, 354-430)이 신플라톤주의 철학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신플라톤주의자 포르피리우스(Porphyry, 234-305), 프로클로스(Proklos 412-485)는 기독교에 대해서 거부 의식을 분명하게 표방한 철학자이다. 그런 철학 체계를 옹호하고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은 일관성이 없다.

스콜라 철학은 보에티우스(Boethius, 480-524)에서 시작된 보편논쟁(Universalienstreit, Problem of Universals)이다. 안셀름(Anselm of Canterbury, 1033-1109)은 철학논쟁에서 신학논쟁으로 연결하면서, 스콜라신학을 구축하도록 했다. 그는 실재론자였고, 《프로슬로기온(Proslogion)》과 《모놀로기온(Monologion)》에서 신존재증명을, 《Cur Deus Homo?》는 성육신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시도했다.

칼 바르트 신학을 논하면서 중세 철학을 조금 장황하게 제시하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교적 철학(Philosophia christiana)”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는 중세 철학 그리고 근대 계몽 철학을 동일한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계몽철학의 시녀인 자유주의 신학에서, 현대철학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철학적 신학을 유지하고 있다.

칼 바르트는 로마 카톨릭주의의 자연신학, 마리아론 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교황 바오로 6세는 칼 바르트를 20세기 최고 신학자로 평가했다. 교황 바오로 6세(1897–1978)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이끌며 현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개혁을 추진한 인물이다.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자는 칼 라아너(Karl Rahner, 1904–1984)인데, 라아너는 바르트의 신학을 채용했다. 결국 바르트의 신학적 업적을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바르트 전문 연구가인 발타사르(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는 바오로 6세에 의해 국제신학위원회(ITC)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비록 바르트가 로마 카톨릭주의를 비판했지만, 그의 신학은 교황의 권위를 인정할 수 있는 체계이고, 로마 카톨릭의 모든 교리에 교의학적 검토를 수행하는 개방성을 두게 된다. 교황 바오로 6세(Paul VI, 재임 1963-1978)는 칼 바르트를 “토마스 아퀴나스 이래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교 신학자”라고 평가했다.

칼 바르트는 신학과 학문을 동등하게 생각한 근거 위에 교회를 구상했다. 칼 바르트가 생각하는 교회는 하나님에 관한 말을 하는 공동체였다. 그런데 바르트는 계시가 교회 밖, 어느 곳에서도 가능한 체계이기 때문에, 교회의 특수성은 사라졌다. 신학과 학문을 동일하게 평가했기 때문에, 교회가 갖는 특수성은 사라졌다. 그래도 바르트에게 교회의 규범성을 강조한다고 한다. 그러나 특별계시를 수행하는 기관으로서 교회의 유일한 기능을 부정한다면 특수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바르트가 ‘기독교’가 아닌 ‘교회’로 ‘교회교의학’을 구성했지만, 바르트 이후의 신학에서는 “교회보다 하나님 나라 확장”이 등장했다.

1930년대 바르트는 교의학(탐구로서 교의학)으로 신학을 추구한다. 그래서 바르트의 신학을 도상신학(途上神學)으로 표현할 수 있다. 바르트는 처음 문장에서 Dogma를 규정하지 않고, dogmatic(교의학 혹은 교리적)으로 진행한다. 바르트가 dogmatic(교의학)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는 것은 과거 Dogma에 대한 재검토, 그리고 모든 현상에 대해서 개방하고, 신의 계시 사건이 있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선언이다. 야스퍼스(K. Jaspers, 1883-1969)는 철학이란 언제나 “길 위에 있는 것(Sein auf dem Wege)”이라고 말했다. 현대철학에서는 규범된 진리 체계를 거부하고, 탐구하는 전제에서 탐구를 시도한다. 그리고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한 종교다원주의 결정과 1968년 5월, 68혁명에서는 결국 “모든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Il est interdit d'interdire)”는 선언까지 도출되었다. 1999년에 루터파 교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칭의교리에서 화해(JDDJ)를 선언했고, 2001년에는 네덜란드에서 동성혼인이 법적으로 허용되었다.

바르트의 신학은 자유주의에서 연속되는 사유 체계이고, 바르트에 이르러서 교회는 더욱 과격하게 세속화로 들어갔다. 세속과 교회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세속의 명제인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구호가 교회에 들어와 모든 교회 질서들은 세속화에 너무나 쉽게 무너졌다. 그 거대한 빗장을 칼 바르트가 신학과 학문이 동일하다는 선언으로 개방시켰다. 세속과 교회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자유주의, 칼 바르트 신학, 현대신학의 유럽 교회의 신학 전철(前轍)을 한국 교회가 따르지 않아야 한다. 한국 교회는 루터와 칼빈의 이신칭의 복음, 그리고 정통 교리(Dogma)를 통해 교회를 거룩하게 세워야 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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