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성경의 언어 <84>
요한 1서의 중심어
성경의 중심을 보고 잡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중심에 의해서 전후나 상하 등이 논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심어는 문장에서의 핵심어와 동일하다. 그리고 조화를 이루는 것과 매우 밀접하다. 성경 전체의 중심어는 하나님이신 여호와와 관계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이나 주 등과 관계되어 신약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중심을 염두하는 것은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진행된다는 점을 의식한다는 뜻이다.
성경의 전체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연결된다는 점이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체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이 중심의 의미는 그리 크지 않다. 어쩌면, 그 가치나 의미는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여기서 체계적이라고 할 때, 그 구체적인 생각을 자기가 지닌 자신의 온몸에 연계를 시킬 수 있다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자신의 신체와 관계되어 정신과 이성 등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요한1서에 다가서고자 한다. 요한1서는 교회가 비진리와 투쟁하는 진리를 증거하고 있는 히브리서부터 유다서까지에 들어 있다. 요한 2·3서와는 한 통처럼 붙어 있다. 여기서 한 가지를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결론이나 최정상(Top)과 같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관계나 조화 등은 높은 곳에서 잘 보인다는 이치다. 성경이야말로 그렇게 조직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이라는 위치에 서지 않고 그 앞의 내용들을 온전히 내려다볼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 제기를 던져두고 요한 1서의 특성에 접근해 간다. 요한1서의 기초는 4복음서이며 특히 요한복음과 깊이 연계되어 있다. 그 시작부터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마치 빛같이 번뜩이고 있다. 그 뒤에 바로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revelation) 된 지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말씀은 요한복음 1장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에 기초하고 있지 않은가? 요한 1서 1장 2절에서 이 말씀(이)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도 4복음서 중에서 특히 요한복음으로 많은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그 아들을 4복음서와 함께 이해해야 하므로 목차나 문제를 만드는데 그 의의를 둘 수밖에 없다.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는 것도 또 하나의 큰 문제이다. 이렇게 문제를 만들고 그 중심을 보고자 하는 것은 공부나 연구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근본적인 중심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요한 1서의 중심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1:3, 5:20 등)이다. 이러한 점은 요한계시록에서 주 하나님과 주 예수로 표현되는 것과 매우 밀접하다. 이제 이 하나를 둘로 분석하여 그 중심을 보고자 하는 데 도움을 삼고자 한다.
1)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한 표현은 요한복음에 제일 많다. 이것은 예수의 성령 잉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요한 1서에서는 계명과 사랑 그리고 앎 등에 연계되어 진리를 증명하고 있다. 진리에 속한 자를 무엇으로 이해할 것인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도외시하고 가능하겠는가? 범죄하는 자마다 진리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표현을 무엇으로 소화할 수 있는가?
2)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위의 “그”는 하나님 아버지다. 가능하면 요한 1서의 표현을 인용하여 마무리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다. 요한1서에서 “자녀들아”와 “사랑하는 자들아”와 같은 애칭은 아버지와 아들 관계 속에서 나오는 표현들이다. 이 세상과 그 정욕 다 지나가되(pass) 오직 진리이신 하나님의 뜻은 영원하다. 요한복음 16장에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선언했다. 요한 1서 5장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라고 하면서 요한계시록을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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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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