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성경의 언어 <85>
하나님의 아들의 편지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하신 것과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서 교회에 전해주신 말씀들이다. 이 중에서 로마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는 대부분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몸을 입고 오셔서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으로서 온전히 그 직임을 완성하셨다. 이러한 내용을 염두에 두면서 신약성경을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신약성경뿐만 아니라 구약성경도 그 역사의 진행에 있어서 선지자 시대의 중심에서 왕정시대의 중심으로 다시 제사장시대의 중심으로 진행되는 사실이 확인된다. 신약성경에서도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려고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의 순서체계를 취하고 있다.
그러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는 논리체계는 없을까? 그 논리체계는 성경자체 안에 내재되어 있다. 보통 교회의 일치나 단합을 갈망하면서 외치는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에도 무엇을 아는가? 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 중심에 하나님의 아들이 있다. 히브리서는 1장에서 5장까지의 전개에서 두 번(1:5, 5:5)이나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고 강조한다. 이 내용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는 논리 중에 기본적인 중요한 요소가 된다. 또 성경을 보는 이라면 쉽게 알면서도 어려워하는 내용인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와 같은 것들이 대단히 많다. 그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 중에 하나님의 아들과 관계되는 것도 많을 수밖에 없다. 인륜적인 부자관계는 핏줄로 연결된 두 사람임을 쉽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영이신데 그분의 아들이 정말 있나? 와 같은 의문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를 위해서 바로 제목에 그 아들의 편지라고 내걸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편지 형식으로 말씀하시고 있으므로 그 부분을 강조하고자 한다. 요한계시록 2~3장에서 네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하셨다. 이와 관련하여 여기서 요한계시록 1장 13절에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나타나고 있음도 밝히고 싶다. 이 글에서는 요한계시록에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적인 표현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확인하는 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
1) 두아디라와 사데 교회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는 것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2:18)라고 표현했다. 이 이하에 나오는 “내가”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 아들이 철장을 가지고 만국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한다. 이러한 철장을 지닌 권세는 시편 2편에서 기원한다. 이 철장뿐만 아니라 이미 위에서 언급한 오늘날에 아들을 낳는다는 것도 같은 이곳에서 나오고 있다.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여자가 낳은 아들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다. 14장에서 144,000명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다. 여기에서 어린 양은 바로 같은 맥락의 하나님의 아들이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한 것에는 두아디라 교회처럼 표현되어 있지 않고 편지의 내용에서 확인된다. 3장 5절에 “이기는 자는 ……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내”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뿐만 아니라 사데 교회에 보낸 편지 내용에 나오는 모든 “내”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중에서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가 있는데, 이것은 16장 15절에서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의 놀라운 위치와 그 맥을 같이한다.
2) 빌라델비아와 라오디게아 교회
위의 두 교회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하심을 확인하였다. 위와 같이 이 두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하신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내용에서 “나의 인내의 말씀(10절)”과 “내 하나님 성전(12절)”과 “나의 새 이름(12절)” 등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하리라(21절)”고 한 표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에서 “나”와 “내”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렇게 하여 21장의 끝에 표현된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에서 이 어린 양은 하나님의 아들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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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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