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성경의 언어 <86>
디도서에 붙은 빌레몬서
신약성경이 구약성경에 연결되어 붙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이 글의 목적이다. 구약성경 39권과 신약성경 27권이 연결되고 합쳐져서 성경 전권(全卷)이 된다. 이 전권에서 권은 연결의 의미를 지닌다. 이 연결의 가치나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생각하려면 사람의 목에 비유하여도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목은 상하로 신경이나 피 등을 연결해 준다. 그 의미는 바로 생명이라는 것이다. 신학의 생명이 바로 연결에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치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신약성경의 일부분을 선정하였다.
위에서 비유한 목 부위는 성경 전체에서 구약성경에서는 소선지서이고 신약성경에서는 마태복음이다. 소선지서의 마지막인 말라기서와 신약성경의 시작 부분인 마태복음이 붙어있지 않고 나누어져 떨어져 있다고 상상해 보라! 기억은 논리적인 이해를 통하여 입력되고 출력된다. 차례나 체계를 따라 이해되어 가지 않으면 온전히 기억되어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가락을 보면 엄지의 2마디로부터 모두 3마디인 가운뎃손가락을 거쳐 새끼손가락에 이르고 있다. 이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 연결인가?
이렇게 신비하다고 하는 인체를 보아도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 인체의 조직보다 더 강하고 신비한 것이 성경이 아닌가? 중요한 것은 성경의 전체이다. 그것은 전체에서 체계가 보이고, 그 체계에서 계통이 나오고, 그 계통에서 통일되고, 그 통일에서 일관성이 있고, 그 일관성에서 관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온전한 되새김질이나 묵상은 전체의 관통에서부터 나올 수 있다. 구약성경이 신약성경보다 상대적으로 아날로그적이라면 신약성경은 디지털적이다. 이러한 것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연결과 전체를 고려할 때 하나의 관점이다. 다시 이 전체를 사람의 온몸에 비유하자면 신약성경은 목 윗부분이고 구약성경은 목 아래의 부분이다.
이렇게 전체를 강조하는 것은 방법에 빠져 목적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신약성경의 한 부분인 디도서와 빌레몬서를 통하여 전체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분석은 전체를 종합하기 위해서이고, 종합은 그 전체에서 특정 부분을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디도서는 디모데후서 뒤에 위치하고 빌레몬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또 빌레몬서는 디도서 뒤에 있으면서 동시에 히브리서 앞에 놓여 있다. 빌레몬서까지는 교회 무장 부분이고 히브리서부터는 교회 투쟁이 전개된다. 이렇게 확대하여 가면 신약성경이 무슨 주제를 중심으로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1) 구주가 제일 많은 디도서
구주(救主)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은 디도서가 자체적으로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2장 13절에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있다. 이 자체의 문구로 하나님은 구주(savior)이시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여기서 이 구주가 디도서에 제일 많이 표현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디모데후서 뒤에 연결된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구주’는 신약성경에만 나오며 구약성경에는 없다. 신약성경에서 총 23회 표현되는데 그중에서 디도서에 6회 출현 되고 있으니 거의 4분의 1이다. 우리 구주 하나님(1:3)과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1:4)에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는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 구주께서 영생을 거짓 없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셨다(1:2).
2) 목적을 강조한 빌레몬서
빌레몬서의 내용과 분량(分量)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빌레몬서를 시작하는 문구는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이다. 성경 전체에서 소위 말하는 “……위하여”로 유일하게 시작한 것이다. 그 짧은 내용을 구성하면서 이 목적형으로 표현한 것은 어떠한 강조이겠는가?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는 바로 진리를 위하여가 아닌가? 이런 표현을 시작하면서 한 것은 그 목적과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 목적형은 그 이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9절에서도 이유로 풀어도 무방한 목적형을 강조하였고, 13절에는 “내 복음을 위하여”로 표현되었다. 이 목적형은 그 이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15절에서 “저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이를 인하여 저를 영원히 두게 함이니”(김종록,1986, 경북대석사논문참조)로 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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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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