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1-06-07 19:5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여호와의 시공 작정


시공(時空)은 시간과 공간이다. 이 세상에서 서로 부착(附着)되어 있는 것들 중에서, 시간과 공간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서 너무도 유명하다. 그것은 시간 없는 공간이 있을 수 없고, 공간 없는 시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기본적으로 숙명론이나 자유의지의 문제를 상기시켜 주기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공간과 시간이 모든 사람에게 평생 동안 끝까지 달라붙어 따라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인의 일생 동안 늘 함께 하는 공간과 시간은 그 나름대로의 특성과 기능을 지니고 있다. 더 나아가 그 존재의 이유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끈질기게 끝까지 사람에게 따라오는 공간과 시간을 인간과 함께 들여다보고 싶다. 
시간과 공간은 역사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올바른 역사관을 확인하려면 결국 성경적인 신관과 성경관에 가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을 안다는 것과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하나님을 여호와로 아는 것이 성경관과 신관에 있어서 그 핵심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경관을 증명하려는 그 과정에서 성경신학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성경신학은 구약신학과 신약신학으로 체계화를 이루고 있다. 이 체계 속에서 생명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하나의 체계로 연결되고 조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신관에 있어서의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과의 관계이다. 그 둘의 관계가 하나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 점에서의 핵심은, 그 둘의 관계가 어떤 과정을 통하여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증명하는 문제이다. 여기서는 시간과 공간이 역사(歷史)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점만을 강조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을 영원 안에서 작정하셨음을 간단히 분석하고자 한다.

1) 여호와의 시간 작정

이 시대는 마침 빅(Big) 데이터나 인공지능같이 더욱 시간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 시대 속에 깊이깊이 다가온 시간을 인간들은 1초도 당기거나 늦출 수 없다. 이것은 시간이 지니는 힘이기도 하다. “세월 속에 장사 없다”라고 한다. 시간과 함께 지내지만 알 수 없는 시간! 수많은 철인들이 이 시간의 정체를 알려고 얼마나 몸부림쳤던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바르트 등까지 얼마나 연구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쾌하게 정리될 수 없었던 것은, 성경에 그 바탕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강하고 중요하게 강조하는 “영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간을 근본적으로 조명할 수 없었다. 그러면, 시간 자체가 절대적인 주권을 지니고 스스로 지나가는 것일까? 이것은 시간의 정체성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시간의 정체성에서 제기되는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시간의 존재여부이다. 시간은 정말 있는 것일까? 여기서는 시간의 존재여부가 그 중심에 있지 않다. 문제 제기만 하고 지나가야 한다. 이 주관(主管)은 주인과 같은 의미이다. 시간에 진정한 주인이 있는가? 이 질문이 인간에게 중요하다. 그것은 인간이 진정으로 시간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와 같은 곳에 담겨 있지 않는가? 시간을 만든 주인이 있다면, 그분은 정말 대단한 기술자이다. 성경은 날이나 때가 이른다고 한다. 마치 날이나 때에 발이 있어 도착하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우화나 신화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고 핵심 주제에 의하여 관계적으로 있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임한다는 것은 근원에서 나온다는 의미다. 창세기에서 첫째와 둘째 등으로 그 순서를 매겨 언급한 것은 이 날에 주관자가 있어 그 섭리를 강조한 것이다. 이 날의 주관자가 또 사시(四時)를 만들었다. 이 주관자께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 끝까지 맞추어가고 있다. 구약의 선지서에서 많이 언급한 ‘여호와의 날’은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는 것과 관계되어 있다. 이 모든 날의 근본은 하나님 여호와의 작정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2) 여호와의 공간 작정

이 공간을 여호와께서 작정하셨음은 시간 작정과 본질이나 원리 면에서 동일하다. 이 땅의 기운을 땅 자체가 가지고 있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영(靈)이 임하여 모든 소산을 낸다고 근본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강조한 사도행전 17장의 말씀으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칼 바르트의 마리아론 (1)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육신은 아니고 말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