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22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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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0-01-09 19:16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경적 계시론 회복하기
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 21:24〜25)

앞의 본문은 요한복음 마지막 장 마지막 절 내용이다. 매우 특이한 내용의 결론이다. 요한복음의 신적 권위를 사도 요한의 증언이 참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그 근거로 삼고 있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신 사역에 대한 기록은 아무리 기록한다고 해도 끝이 없는 무한 분량이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일반적 상식으로는 아무리 낱낱이 기록했다고 하더라도 책의 분량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요한복음 결론 내용은 모두 기록한다고 해도 지구 안에 그 모든 내용을 둘 수 없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신 기간은 3년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정도 기간의 사건은 일일이 기록할 수 있고 또한 어느 정도 크기의 도서관이면 모두 보관할 수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더욱이 디지털 시대의 정보 저장 장치를 사용하면 적당한 크기의 메모리 장치 정도면 기록할 말씀을 저장하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 저장의 상식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앞의 성경 본문은 인간의 상식적 판단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모두 기록해도 이 세상에 둘 수 없다는 말인가? 그의 행하신 일의 정체와 본질을 규명하지 못하면 앞의 구절은 사실이라기보다 예수께서 하신 일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과도한 비유법을 썼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렇게 판단하는 순간 성경권위는 과장된 얘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우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혹은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이 ‘말씀’이라는 개념을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반드시 구별해야만 한다. 인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인 ‘말’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말씀’이라는 개념이다. 부모의 말과 선생님의 말을 높여서 ‘말씀’이라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에 대해 ‘말’이라고 할 수 없으니 ‘말씀’이라고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말도 필자는 교회에서 들은 적이 있다.
우선 시편의 다음 구절을 보면서 ‘특별계시 기록으로서 성경’,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에 대해 더 생각해 보자.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시 19:1〜4)
본문에 보면 하늘과 우주는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는 곳이다. 낮과 밤은 서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없어도 낮과 밤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의사소통을 하고 있으며 모든 우주와 지구의 피조물들에게 바로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쉼 없이 전해지고 있다. 이것을 다윗의 시라고 해서 다윗의 신에 대한 자기 고백적 술회(述懷)라고 한다면 심각한 성경권위의 훼손이 생긴다. 하나님의 계시를, 특별히 문자를 수단으로, 기록하게 하여 이렇게 읽을 수 있도록 한 그 기록이 다윗 개인의 주관적 고백이 된다면 객관적 진리로서 성경권위는 이내 사라져 버린다.
앞의 두 성경 본문을 연결해서 이해해 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신 일들을 기록한다면 이 세상에 둘 수 없다는 말은 단지 제자들의 눈에 3년 동안 보여준 것과는 다른 차원의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 근거를 앞의 시편 19편 본문에서 찾는다면, 언어라는 기록 수단을 넘어서 있는 진리, 인간의 청각에 전달되는 내용을 넘어선 차원의 진리, 바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 본질이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은 실상(實狀) 이 세상의 언어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하늘에 속한 진리의 ‘무한성’을 전제로 한다. 앞의 시편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 자체의 무한성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요한복음 본문은 계시의 우주적 차원의 무한성을 전제하면서 ‘기록의 무한성’을 강조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보는 문자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보혜사 성령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전 우주적 차원의 무궁한 계시 중에서 선별하고 분류하여 선지자나 사도들을 통해 기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특별계시 기록의 원천인 언어를 초월한 우주적 차원의 계시를 배제하거나 배척하면서 ‘문서편집설’과 ‘후대 조작설’을 운운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일 수밖에 없다. 앞서 살펴본 요한복음은 전 우주적 차원의 무궁한 계시 중에서 단지 사도 요한 자신에게 허락된 내용만 기록한 것이며, 시편 19편의 우주에 충만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다윗 자신에게 허락된 것을 기록한 것이다.
영존하시는 하나님 계시의 특별한 기록으로서 성경의 신적 권위는 종교개혁 500년을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세계 교회에 가장 시급한 일이다. 성경이 문자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임의로 비평하거나 상식적 기준으로 해석한답시고 성경진리를 난도질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 중심적인 올바른 계시관 확립이 매우 절실하다. 성경 본문의 부분적 발췌가 많은 무리를 동반함을 알면서도 성경의 신적 권위를 강조하는 매우 익숙한 부분들을 다시 강조할 수밖에 없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 13:9〜10);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6);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0〜21)

첫 인용은 신약계시 기록의 완성 나아가 특별계시 기록으로서 하나님의 말씀 전체의 기록이 완성된다는 것을 약속하는 내용이다. 이 예언은 요한계시록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정작 이 사실을 예언한 바울 사도는 모두 볼 수 없었지만, 우리는 모두 보고 있다. 두 번째 내용은 보혜사 성령의 주관하시는 성경진리의 권위는 단지 지식을 습득하는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듣고 깨닫게 하여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게 한다는 ‘말씀의 운동력’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말씀의 운동력이 ‘들을 귀 있는 자’들에게 해석과 적용이 가능하게 하여 ‘주관적 판단’으로 흘러가게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세 번째 내용이다. 그리고 이렇게 완성된 특별계시 기록인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대한 왜곡은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엄격한 예언으로 끝맺고 있다.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18〜19)

<186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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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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