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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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6-04-21 16:4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교 건축과 기독교 건축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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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며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숴질만할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다니엘, 2장 40절~43절 개역성경)
기업들은 자사 제품의 마케팅 전략으로 소비자들에게 믿음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목적으로 다양한 광고 언어를 묘사한다. 그 예로 일론 머스크가 운영하는 테슬라(Tesla)가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가 있다. 이 로봇의 이름에는 ‘최선’, ‘최적’, ‘최고’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과거 우리나라의 한 전자 회사에서도 스마트폰 브랜드명으로 ‘옵티머스’를 사용한 적이 있다. 경제의 생산성 관련 분야에서도 주어진 업무나 제품을 생산하는 일에 있어서 비용 절감 등을 위해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최고의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을 ‘최적화(Optimization)’라고 부른다.
또 다른 키워드는 물리적 크기나 압도적인 힘의 한계치를 의미하는 ‘맥시무스(Maximus)’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 <글래디에이터(Gladiator)>의 주인공 ‘맥시무스 데시무스 메리디우스’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로마가 꿈꾸던 이상적인 시민이자 지도자로서의 인간상을 상징한다. 그는 명예와 용기 그리고 책임에서 최고인 사람으로 로마의 덕목인 ‘비르투스(Virtus)’ 즉 남성적인 덕, 용맹, 명예를 의미하는 대표적인 가상 인물이었다. 또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Tangled)>에 등장하는 왕실 근위대의 말 ‘맥시무스’는 이름이 가진 위엄과 실제 행동 사이의 간극(間隙)을 통해 보는 이들로 매혹적인 흥미를 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 맥시무스에 파생되어 오늘날 최대치를 의미하는 맥시멈(Maximum)이라는 단어도 널리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옵티머스(Optimus)’와 ‘맥시무스(Maximus)’의 어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오늘은 그 기원을 찾아 고대 로마 초기의 세계로 달려가 보려고 한다.


로마 왕정의 형성과 몰락

초기 로마는 람네스(Ramnes, 라틴인), 티티에스(Tities, 사비니인), 루케레스(Luceres, 에트루리아계) 세 부족의 소규모 연합체로 출발했다. 4대 왕까지는 주로 라틴계(Latins)와 사비니계(Sabines)가 교대로 통치하며 국가의 기틀을 잡았다. 라틴계는 티베르강 유역 라티움 지방, 즉 오늘날의 로마 주변에서 형성된 부족 국가로 로마를 건국한 토착 주역이었다. 사비니계는 로마 동북쪽 아펜니노산맥 인근 산악지대에서 형성된 부족 집단이었다.
건국 초기 로마는 주변국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주로 목동과 도망자, 노예들로 불안정한 부족에 불과했다. 초대 왕 로물루스는 국가의 기틀인 인구를 확보하기 위해 카피톨리움 언덕에 '아실룸(Asylum, 도피처)'을 설정해 이주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주로 남성이었던 이들을 위해 사비니 여인들을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져 한동안 다툼으로 갈등이 깊었으나, 사비니 여인들의 헌신적인 중재와 화해를 통해 두 민족은 혈연적으로 결합한 연합 공동체로 발전했다.
로마 왕정 후기(5대 왕~7대 왕)에는 북방의 선진 세력인 에트루리아계 왕들이 집권했다. 이들이 가져온 선진 건축 기술과 문화를 도입하여 로마를 거대한 도시 국가로 도약시켰다. 에트루리아인들은 로마에 하수도(클로아카 맥시마), 카피톨리움 신전, 광장(Forum) 등 도시 인프라를 구축한 선진 기술자들이기도 했다.
7대 왕까지 이어진 로마 왕정 몰락의 결정적인 계기는 루크레티아 사건이었다. 7대 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BC 534년~BC 510년)는 이미 오만한 독재와 폭정으로 로마 시민들과 원로원의 민심을 잃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그의 이름 수페르부스(Superbus)의 뜻도 거만한, 교만함이다. 이 시기에 전쟁에 나갔던 왕의 아들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가 왕족 콜라티누스에게 질투심을 느낀 나머지 콜라티누스의 부인 루크레티아를 겁탈(劫奪)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됐다. 이 사건으로 콜라티누스의 부인 루크레티아는 수치심과 더불어 복수심을 심어 주기 위해 스스로 자결(自決)하고 말았다. 이때 콜라티누스와 관계가 좋았던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이 사건을 보고 분노한 나머지 루크레티아의 가슴에 꽂힌 칼을 빼어 들고 시민들 앞에 나가 왕정 타도(打倒)를 외쳤다. 이를 계기로 왕의 아들이 귀족의 부인에게 해를 끼친 범죄로 말미암아 타르퀴니우스 스페르부스 왕가는 추방당하고 말았다. 이로써 BC 509년 로마의 왕정은 막을 내리고, 더 이상 왕 없는 국가인 공화정(Res Publica)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국가의 도덕 표준, 법과 질서의 절대적인 수호자 ‘유피테르’

로마 왕정 초기의 종교 건축은 국가의 기반이 미비(未備)했기 때문에 독립된 건물 형태보다는 야외에 흙이나 돌로 쌓은 제단인 ‘아라(ara)’와 규모가 작은 성소 ‘사크라리움(sacrarium)’ 그리고 신이 거주하고 있다고 믿었던 신성한 숲 ‘루쿠스(lucus)’ 등에서 제례(祭禮) 행사가 거행되었다. 여기 사크라리움은 신을 모시는 독립된 건물이 아니라, 성스러운 물건(Sacra)을 보관하는 장소였다고 한다. 이처럼 로마 왕정 초기에는 종교 제례는 일정한 장소에 고정된 건축물 중심이 아니었다. 이러한 것은 로마인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형과 경계 자체를 신성하게 여겼음을 보여주며, 원시 종교에서, 초목이나 무생물 따위의 만물에 혼령(魂靈)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Animism 정령(精靈) 신앙)’적 성격이 강했음을 엿볼 수가 있다.
이후 선진 건축 기술을 보유한 에트루리아인들이 왕권을 장악하면서 그들의 문화와 기술을 수용하게 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토목 기술과 함께 신전과 같은 본격적인 종교 건축이 발전하게 되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지난번에 잠시 언급한 ‘유피테르 옵티무스 맥시무스 신전(Temple of Jupiter Optimus Maximus)’이다. 다신교였던 로마는 이 신전에는 유피테르와 함께 두 여신을 숭배하였다. 두 여신 중 신전 좌측에 있는 유노(Juno, 그리스의 헤라 신)는 유피테르의 아내이면서 가정과 여성 그리고 국가 재정을 수호하는 신이다. 다른 하나인 미네르바(Minerva, 그리스의 아테나 신)는 신전 중앙에 있는 유피테르의 우측에 있으며, 지혜와 기술의 여신이다. 이 신전은 에트루리아인들에 의해 건설된 건축 양식으로 대략 4m 높이의 거대한 기단(Podium) 위에 세워져 있으며, 신전 앞쪽 정면 계단으로만 왕래할 수 있는 구조이다. 신전 규모는 대략 가로 53m, 세로 62m로 그 시대에 지중해 연안에서 큰 건축물  중의 하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유피테르는 우리에게 익숙한 영어식 표기로 ‘주피터(Jupiter)’이며, 태양계에서 거장 거대한 행성인 목성의 호칭이기도 하다. 또한, 로마인들은 유피테르가 하늘을 다스리는 신으로 생각했으며, 권능의 상징으로는 벼락과 독수리 그리고 참나무이었다. 오늘날 세계 각 국가에서 독수리 문장(紋章)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로마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유피테르를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Zeus)처럼 신들의 왕, 국가의 수호신으로 동일시 하나 유피테르는 도덕적으로 타락된 모습으로 표현된 제우스보다 신화적인 것을 넘어 로마라는 국가의 도덕적인 표준이자 법과 질서에 있어서 절대적인 수호자로서 최고의 신으로 숭배하였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카피톨리누스 언덕(Capitoline Hill)에 유피테르 이름을 최상급의 수식어, 가장 도덕적이고 인간에게 자애로운 존재 ‘Optimus(최선, 最善)’와 가장 권능과 위엄이 있고 강력한 존재임을 뜻하는 ‘Maximus(최대, 最大)’, 다시 말하면 ‘가장 선하고 가장 위대한 유피테르’라고 숭상(崇尙)하며 신전을 세웠다. 훗날 공화정 시대에는 신들에게만 부여했던 호칭 옵티무스(Optimus)와 맥시무스(Maximus)를 황제에게도 붙여 부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로마 왕정 시대에 종교 건축물 중 베스타 신전(Temple of Vesta)과 야누스 신전(Temple of Janus)이 있었다. 베스타 신전은 일반적인 신전과 달리 원형 움집(Tugurium) 모양으로 로마 초기 정착민들이 살았던 집과 같이 로마 포룸에 지어졌다. 이 신전 내부에는 신상이 없는 대신에 국가의 평안을 상징하는 ‘신성한 불’이 일 년 내내 타오르고 있었다고 한다. 야누스 신전은 포룸 거리 입구에 세워졌으며, 처음과 끝의 관문 신으로서 로마의 전쟁과 평화를 상징하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이 신전의 구조는 양쪽에 문이 달린 통로 건물로서 안에는 앞뒤로 얼굴이 달린 야누스 신상이 있었다. 이 문은 로마가 전쟁 중일 때는 개방하고 평화로울 때는 문을 닫았다고 한다.

계단은 기득권자들의 권력 과시용으로 이용

일반적인 건물이나 종교 관련 건물에서 관심 있게 살펴봐야 할 구조물은 계단이다. 모든 건축물의 계단 높이는 인간 공학적 치수 18cm 정도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거의 같다고 한다. 고대부터 계단과 시선 높이는 정치적으로 계급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권력을 가진 기득권자들의 권력 과시용으로 이용되어 왔다. 우리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높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종교 건축 역시 높은 곳을 우러러볼 수 있도록 대부분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들의 권력을 창출하는 높은 공공건물이나 종교 건축물의 계단이나 첨탑(尖塔)을 바라보면서 과연 성경적으로 올바른 건축이 무엇인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오현 편집국장 ((주)한국크리스천신문, 장안중앙교회 장로)
이메일 : donald257@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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