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의미분석 성경개론』 히브리어판 (An outline of the Bible, by Rev. Yong-Ki Park)
이 번역서가 교회로서 진리로 싸운 열매 중 하나인데 간단하게 평하려고 한다.
『성경개론』을 의미분석 방식으로 땅불쑥하게 박용기 목사가 저술한 지 서른 돌이 다가온다. 2005년에 박은 제4판을 가지고 현대 이스라엘국에서 성경 글자로 번역한 책이다. 나중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세히 밝히겠지만 퍽 조심스럽다. 어느 만큼 분량으로 적어야 관련한 모든 사람이 유익하고 읽는 이들도 좋을 텐데, 아무튼 새겨서 받아주기 바란다.
노파심으로 한마디 하면, 역자가 이스라엘 나라에 살면서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흠모하는가를 머리말을 보면 단박에 나타난다. 그 세월이 22년이라. 마침내 올봄 아빕 달에 이 놀라운 책을 번역하여 출판했다. 제가 볼 때 70점쯤 점수를 주고 싶다. 보기 드문 역작이란 말이다. 그러니 뒤에 잘못된 부분을 지적할 때 비판이 아니라 검증하여 더 나은 작품으로 재판하리라 기대한다는 말이다.
번역이란 반역이요 창작이라는 격언이 떠오른다. 책다운 책을 번역할 수 있다면 복스러운 사람이리라. 사실 두 언어를 이해한다는 게 쉽지 않고 좋은 글을 제대로 뒤친다는 건 은혜이다. 불붙는 중동 땅 이스라엘 나라에서 이런 책이 출판되다니, 몇 해 전부터 쥬스 가운데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들이 드러나게 생긴 모양이다. 그 바람에 그곳 성서공회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 중에 마침 “의미분석 성경개론”이 초역된 것을 알고 출판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알다시피 이런 류의 성경개론이 없다. 비스름한 것들이 있어도 온통 비평주의 신학에 근거하기에 성경관부터 문제가 된다. 신학에 때 묻지 않은 번역자였기에 더욱 뜻깊다. 이번에 마침 번역자가 고국을 방문했고 원저자와 신문사에서 간단한 서평과 소감을 서둘러서 부탁하는 바람에 속독과 통독으로 살펴보고 이 글을 적는다. 성경개론을 다른 나라말로 번역하여 그 뜻이 어느 만큼 해석되고 밝혀지기에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아는 만큼 본 만큼 가감 없이 히브리어로 번역한 책을 살펴보려고 한다.
『의미분석 성경개론』을 척 보면 쉽게 뒤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맘으로 히브리어로 번역했다면 오산이다. 어휘선정부터 문장구성과 문맥 흐름의 틀을 성경의 성깔처럼 일관성 있게 나타내야 한다. 그저 글줄이나 옮긴다고 번역이 아니다. 저자의 숨결과 역자의 숨결이 만나고 거룩한 사귐을 나타내야 한다. 사본학을 보면 베끼는 일에도 줄임과 늘임이 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뜻으로 왜곡될 소지도 있기에 만만치 않다. 번역도 마찬가지로 양쪽 언어와 문화를 알고 저자의 의도를 아는 게 중요하다. 번역한다고 하면서 거짓과 왜곡은 금물이다.
훑어보면서 느낀 점 중 하나가 이 번역서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낱말 하나에도 큰 차이를 보일 수 있기에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더라도 원문을 더 풍성하게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번역 그러면 삼류소설 말고는 할 수 있는 한 직역으로 해야 한다. 직역이란 기계식으로 뒤치는 게 아니다. 직역이 아닌 해석역이나 설명역은 엄밀히 말하면 주석성경 정도이다.
이런 면에서 개론 부분에서 창세기 1장 1절에만, 하위 괄호들과 풀이들에 있는 제목과 내용에 주석하듯 주를 달고 성구들을 적었다. 이것은 원서를 제대로 맛볼 수 없게 만든다. 아무리 히브리말이 우리말과 달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 좋게 보면 얼마나 이 진리를 현대 유대인에게 전하고 싶었을까? 모르는 바가 아니다. 보편한 번역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여러 유대주의 보수파들을 감안하다보니 표현에서 뭉뚱그릴 수 있다. 이 번역서를 읽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먼저 눈에 띄었다. 역자의 머리말은 있는데, 네 차례나 쓴 저자의 머리말을 뺐다. 까닭을 모르겠지만, 다시 중판할 때 반드시 살려야만 한다.
재미있는 표현도 보인다. “성경”을 몇 가지로 표현하는데 가끔 “그 언약들”이고 거의 대부분 “타나크서와 새 언약서”이다. 구약을 현대에 편집한 것을 말한다. 이것이 마쏘라 원본과 차이난다. 신약을 “새로운 언약”이라고 부른다. 헬라어로는 “그라훼”라고 하는데 히브리어가 갑갑하다. 이 표현을 역자는 내내 적었으니 그 끈기가 대단하다. “삼대언약” 표현도 몇 가지로 뒤치는데 의미는 같지만 때때로 생략하기도 했다. 저자랑 상의하고 뺏는지 모르겠지만 작은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목차와 개론 부분에서 적은 제목들을 보면 무수하게 단어를 덧붙인다. 또 낱말을 빼기도 한다. 이런 게 너무도 많다. 의미를 전혀 딴판으로 만든 건 아닌데 히브리어로 처음 읽는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오자도 보이고 오역도 보이고 낱말들 첨삭이 많다. 첨삭은 이해되지만, 원본을 가릴 수 있다. 특별한 경우 반드시 저자랑 상의하여 히브리어 특징과 그 나라 정서를 고려하여 다듬으면 된다.
이 책을 보면서 현대 쥬스들이 제 말에 자부심이 대단하지만, 훈민정음에 오롯하게 담긴 우리 배달말이 얼마나 뛰어난 말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히브리어가 자음 문자라서 현대어를 보면 신조어를 음역하거나 조합하여 만드는데 발음해보면 엉성하고 갑갑하다. 그래서 우리도 히브리어 글자를 쓸 줄 알고 읽는 법만 익힌다면 누구라도 어떤 나라말보다 그 말을 소리로 쉽게 배울 수 있다. 이게 배달겨레만 지니는 특징이기도 하다.
앞으로 중판을 앞두고 또 성경개론의 연구를 위해 몇 가지 밝히고 싶다. 표절이 넘치고 거짓 문서가 많은 때, 이 책 같이 마음 다한 번역서를 만나기 어렵다. 가사 히브리어를 조금 배워서 읽는다 해도 깨닫지 못하면 허당이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역, 의역, 해석역, 첨삭 따위가 눈에 보이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나중에 우리가 철저하게 손질할 수 있으면 된다. 앞으로 펴낼 영역에도 요번 히역이 좋은 참고가 되리라. 원어성경 글꼴로 출판했기에 그 나라에서도 권위가 있다, 게다가 모음부호를 빼서 학문 차원에서도 좋다. 50여 군데 인용한 성경 구절에만 모음부호를 붙였는데 이건 아주 잘했다고 본다. 자잘한 구체적인 것들은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다루어보겠다.
앞으로 성경 번역 하는 일이 큰 과제로 다가온다. 이제 이스라엘 나라에도 신약까지 성경개론으로 들어갔으니 놀라운 일이다. 원본 뜻이 왜곡되지 않도록 관련된 분들과 교회가 더욱 마음 다하여 연구 후원하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크심을 함께 찬송하면 좋겠다. 어느 성경으로 개론한 것인가를 언제나 잊지 않으면서 한 걸음씩 확인하면서 나아가면 좋겠다. 서평한 결과로 저자가 그곳에 가서 직접 가르쳐야만 할 당위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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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리종연 목사 (서울진명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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