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현대교회를 고발한다
요즈음 한국 크리스천 젊은이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는 폴 위셔(Paul Washr) 목사의 설교가 『현대교회를 향한 10가지 기소장』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됐다. 2008년 애틀랜타에서 열린 ‘리바이벌 컨퍼런스’에서 행한 이 설교는 21세기 최고의 설교로 꼽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의 설교 동영상에 한국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매료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설교는 결코 젊은이들을 매료시킬만한 요소가 거의 없어 보이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거부감을 줄 요소들이 더 많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대교회를 고소한다는 제목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그는 현대교회를, 특히 대형교회들을 매우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현대교회 설교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는가를 말해 주는 반증으로도 읽힌다. 얼마나 성경의 바른 진리를 전하는 설교에 목말랐으면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폴 위셔, 그가 현대교회를 첫 번째로 고소하는 내용은 ‘성경의 충분성’에 대한 것이다. 현대교회가 성경의 충분성을 실제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성경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믿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 성경으로 충분한가, 만족하는가이다.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앙에서의 성경관은 바로 이 두 가지를 진리로 받아들인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을 믿는 것이다. 이 말씀이 영감교리의 성경적 근거다. 영감이란 성경의 기록자들에게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신 은사이다. 하나님은 기록자들의 지식이나 경험이나 감정이나 그가 가진 모든 것을 그대로 사용하시면서 다만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데 잘못된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굳게 붙드시는 특별한 은사이다. 그러기에 성경이 비록 불완전한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뜻)은 오류 없이 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긴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필사자들에 의한 오류 또는 번역상의 오류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 오류는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그리고 경건 생활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고 우리는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오류가 없고, 하나님께서 역사 속의 인간들에게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고 역사와 사물을 판단하고 이해하는 데 충분하다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4:6)는 말씀은 ‘그 안에 다 있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는 데 필요한 것은 다 성경 안에 있고, 인간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진리와 지식은 다 그 기록된 말씀 안에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 성경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그런데 현대교회는 성경으로 만족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들은 교회를 운영함에 있어서 성경보다 사회 과학적인 요소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선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 과학이 우리의 교회와 전도와 선교학에 대단히 깊게 침투된 탓에 이제는 우리가 하는 일을 기독교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게 되었다고 저자는 고소한다.
이 점에 대해서 옥성호는 몇 권의 책을 낸 바 있다. 그 첫 번째 책이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이다. 옥성호! 그는 우리 시대 한국교회의 사표라 할 만한 옥한흠 목사의 아들이다. 그런 그가 젊은 시절을 신앙적으로 방황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목사나 성도들이 존경하는 아버지 옥한흠 목사의 설교에 대해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는 “20대 후반 어느 시점에 ‘기독교는 코미디’라는 결론을 내리고 기독교에 대해 관심 자체를 끊었다. 그러나 가정적 환경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교회출석은 빠지지 않았으며 겉으로는 기독교인으로 행세했다”고 고백한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책을 통해 신앙을 회복하였다고 말하며, 그가 거론하는 스승이라 여기는 다섯 명에 아버지의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다. 아니 ‘스펄전과 로이드 존스의 근처에라도 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한국’이라며, 한국교회에 대한 그의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 당시 한창 전 세계 교회의 이목을 끌었던 로버트 슐러의 설교는 심리학자 노만 빈센트 필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슐러의 설교는 그대로 한국의 대형교회 설교자에게 직송되어 한때 한국교회를 흔들었다. 한국교회는 성장의 한 가지 방법으로 심리학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옥성호는 이어서 한국교회를 향해 두 권의 책을 더 냈다. 하나는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다. 기독교가 전도의 한 방식으로 마케팅의 원리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통해 ‘진리에 대한 자존심’을 버리고 세상 학문에 의존하는 기독교를 비판한 저자는 이번에는 마케팅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회가 마케팅의 원리에 의존하는 이유는 결국 한가지다. 더 많은 사람을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교회는 구매자(교인)의 욕구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복음을 구매 욕구에 맞추어 적절히 상품화해야 한다. 마케팅적 관점에서 약점은 감추고 강점은 부각해야 한다. 남는 것은 현대인의 구미에 잘 맞는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설교만 하면 만점이다. 이것이 마케팅 교회의 모습이다. 거기에 성경과 성령은 없다.
마지막으로 그는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통해서 다시 한번 한국교회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이 책에서는 CCM과 교회 음악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예배 갱신, 영성 계발, 은사 추구라는 이름으로 교회 안에서 신비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특히 찬양 집회라는 이름으로 음악이 교묘하게 감정에 취약한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들을 가장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음악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음악의 힘을 비틀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듣는 이로부터 정서적인 불안감, 행동 장애, 반란 그리고 심지어는 혁명까지도 유도해 낼 수 있다”고…. CCM의 음악 형식이 록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록’의 뿌리는 미국이다. 록은 15세기 서아프리카의 노예 문명에서 도입되었으며, ‘록’은 ‘록 앤드 롤’(rock and roll)의 준말이다. 이 말은 섹스를 의미하는 슬랭 용어이다. 클래식의 주안점은 다양한 악기들의 조화와 멜로디를 통한 정신의 자극이지만, 록은 오프 비트를 반복적으로 강조함으로 듣는 이의 정신이 아닌 육체를 자극하는 데 있다. 육체의 자극으로 오피오이드 호르몬 분출과 성적 욕구를 충동하는 고나도트로핀 호르몬을 유도한다. 뉴에이지 음악 연구자들은 그 음악은 암암리에 우울한 기분에 빨려들어 자살을 충동질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분위기에 빠져들어 가게 하기 위해 뉴에이지 음악에는 반복되는 음률과 박자가 많다. 한국교회는 복음성가라는 이름으로 CCM을 너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면이 없지 않다.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모으기 위한 방편으로, 성령 충만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사용된다. 마치 BTS가 구름 같은 군중을 끌어모으는 것처럼 말이다. 옥성호는 기독교가, 성경이 무엇이 부족해서 심리학과 마케팅과 엔터테인먼트에 의존하는가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폴 위셔는 바로 이 점을 하나님의 법정에 고소하고 있다. 정말 우리는 성경만으로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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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효식 목사 (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부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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