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오피니언

 
작성일 : 20-02-07 19:1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헌법(憲法) 비판 7


1. 장로교 헌법에서 ‘장로’ 조항은 어떤 문제가 있는가?

객원기자  지난 좌담회에서는 교회 정치 ‘제6장 목사’ 가운데서 ‘목사 임직과 임직예식 그리고 청빙 절차’가 사도권을 사칭하고 성경 권위보다 목사를 위한 제도이며 목사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비성경적 불법 조항임을 확인했습니다. 오늘 좌담회에서는 교회 정치 ‘제7장 장로(長老), 제8장 집사(執事), 제9장 권사(勸師), 제10장 임시직원(臨時職員)’에 대해 살펴봐 주시고 은사로 받은 교회의 직분을 성경적 근거 없이 인위적으로 서열화하고 계급화하여 성도 간의 ‘신령한 연합’을 훼손하는 불법에 대해 비판해 주시기 바랍니다.

P연구생  저희는 이미 장로교 헌법 ‘총론’에서 장로회 정치가 세속화된 정치 형태란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입으로는 ‘신본주의 정치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치리권을 행사하는 말씀 중심의 정치’라고 하지만 구호로만 성경 권위를 외칠 뿐 성경 진리 수호와 전파의 사명은 내팽개치고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장로교 정치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堂會)가 자기 스스로 치리권을 행사한다고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으며, 실제로 장로교가 성경 권위를 지키지 못하는데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런 당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지교회에 치리권을 행사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여 성도들의 신앙 자유의 권리를 침해할 뿐입니다.

SH연구생  먼저 장로교 헌법 ‘장로의 기원’을 살펴보면, 구약시대처럼 신약시대에도 목사를 협력하여 교회를 치리하는 치리장로를 세웠다고 하는데 이것부터 벌써 비성경적 규정입니다. 그리고 장로의 권한은 단지 설교와 교훈의 권한을 가진 목사를 협조하면서 치리권을 행사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서 디모데전서 5장 17절과 로마서 12장 7~8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씀으로 치리한다는 것을 정치적으로 다스린다는 것으로 잘못 해석한 결과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 17절에서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다스리는’이란 말은 ‘인도하다’ 또는 ‘돌보다’, ‘~에 관심을 갖다’ 등의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돌보고 보살피는 것입니다. 잘 돌보는 장로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들을 더욱 존경할 것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존경은 수직적인 지배와 종속에 바탕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존경받을 유일한 교회의 감독은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며 성도들은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균등하게 상호 인정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는 단지 남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 신앙의 연륜을 갖춘 신앙 선배를 말하며, 감독은 어떤 자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확고하게 지키기 위해 ‘진리를 감독하는’ 구체적인 일을 뜻합니다. 이런 점에서 장로라는 직분은 진리를 감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됩니다. 그런데 헌법의 교회 정치에서는 목사는 가르치는 자로, 장로는 목사에게 협조하는 자로 이분화시켰습니다. 성경에서 다스린다는 것은 은사와 사랑에 의한 봉사의 의미이지 지배 개념으로 사용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권한이 헌법에서 말하는 목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로에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12장 8절에서도 역시 ‘다스리는 자’를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장로를 진리 감독자가 아니라 정치적 권력을 가진 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권력기관으로서 당회를 조직하고, 나아가 노회와 총회를 당회 위에 상위 치리 기관으로 만들어, 결국 교인들을 철저하게 당회와 노회의 통제 아래 두는 불법적 제도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P연구생  네, 공감합니다. 교회의 유일한 법인 성경을 제대로 배우고 아는 것은 너무나 귀하다는 생각이 더욱 듭니다. 계속해서 헌법에 명시된 ‘장로의 자격’을 살펴보겠습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지도자를 세워 교회를 보살피도록 하십니다. 헌법에서는 딤전 3장 1~7절을 근거로 장로의 자격을 ‘칼빈주의 정통 보수신학과 신앙에 투철한 자로 상당한 식견과 통솔력이 있는 자’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아닌 칼빈주의 전통을 앞세웠다는 사실이 약한 근거가 된다고 봅니다. 또한 칼빈주의의 뿌리가 성경 권위이기 때문에 성경 진리에 신학과 신앙의 토대를 두지 않은 장로는 개혁파 직분자가 아니라고 봅니다. 제5조에 보면 장로고시 시취과목에 ‘일반상식’이 있습니다. 이 규정이 현재로서는 너무도 모호합니다. 오히려 개혁파 신학을 따르는 장로라면 세속의 일반방식을 경계한다든지 극복해야 한다고 봅니다. 일반상식이나 식견보다 훨씬 뛰어난 하나님의 말씀에만 의지하는 직분이 장로라고 봅니다. ‘장로의 직무’ 또한 도리오해(道理誤解)가 아니라 성경 오해를 살피고, 도덕이 아니라 건덕을 위해서, 심방은 성도 교제를 위해 그리고 신앙적으로 미성숙한 자를 보호하기 위해 가르치는 것이 마땅한 직무라고 봅니다. 성경에서 장로는 가르치는 일을 하는데, 정치 장로 조항에서는 그 가르치는 권한이 장로에게 없습니다. 의도적인 비성경적 조항입니다. 장로 직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교사들이 성경대로 성도들에게 바른 진리를 올바르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살펴서 성도들이 말씀으로 잘 양육 받을 수 있도록 보살피는 일에 투철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홍기 연구원  현행 개혁파 교회의 ‘장로 선거’는 완전히 인본주의적인 제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 목사를 두고서 성도들을 지배하게 하는 인위적인 세속적 정치체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장로를 세우시되 직접 역사해서 투표를 통해 장로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임직자 선출 발상은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교황의 지시 아래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지배하는 정치 형태인 로마 가톨릭의 정치 제도와 방불합니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인간의 제도를 통해 왜곡시키는 행태입니다. 신약교회에서는 보혜사 성령께서 직접 나(1인칭)와 너(2인칭), 그리고 그(3인칭)에게 각각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감동을 주시며 은사를 깨닫게 하시고 소원을 주시고 열심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은사 실행은 투표와 같은 제도나 인간의 인정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직접 소원을 주셔서 자원을 하게 하시고 다른 영혼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적인 성령의 사역입니다.
‘장로 임직’에 보면, 장로에게는 본 장로회 정치와 권징조례와 예배모범을 정당한 것으로 승낙하는 서약을 하게 하고, 교인에게는 그 장로를 받아들이고 성경과 교회 정치에 가르친 바를 좇아서 주 안에서 존경하며 위로하고 복종하기로 맹세를 시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서약은 성경과 인간 제도를 동등한 것으로 오해하게 하는 결과를 만듭니다. 66권 성경만 정당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결국 이러한 서약은 장로의 치리에 성도들을 복종케 만들어 성도들을 통제하겠다는 그야말로 비성경적이며 불법적 행태입니다. 오직 성령의 교통하심만이 성도 간의 관계를 보장할 수 있도록 전념해야 하는 은사가 장로의 은사라고 보면, 성도를 지배하는 조항을 장로와 연관시킨 것은 성도를 인위적인 세속 정치의 수단으로 지배하겠다는 심각한 불법 조항이라고 봅니다.


장로교 헌법에서 ‘장로’ 조항은
성령론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


2. 장로교 헌법에서 ‘집사, 권사, 서리집사’ 조항은 왜 비성경적인가?

객원기자  장로교 헌법에서는 집사직을 목사직, 장로직과 구별하고 남자 교인만 집사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집사의 자격’으로 디모데전서 3장 8~13절을 근거 구절로 두고 있는데 남자 집사와 마찬가지로 여자 집사의 자격을 같이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장로교 헌법에서는 차별화하여 여자 집사는 빼고 집사직에 남자 집사만 인정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헌법을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SH 연구생  ‘집사의 의무’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1항은 당회의 감독과 지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모든 성도는 오직 교회의 유일한 통치자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할 지체들인데 누가 누굴 지배한단 말입니까. 이것 또한 계급으로 격차를 두고 법으로 성도를 지배하려는 불법 조항입니다. 집사의 직분의 가치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받은 귀한 은사입니다. 교회의 제반 모든 일들을 받은 은사대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충실히 수행하는 은사를 목사나 장로가 지배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금 말하는 집사는 전통적으로 남자 성도에게 한정된 ‘안수집사’ 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수집사는 남자 성도만 할 수 있다는 조항은 당장 폐기해야 할 비성경적 독소조항입니다. 아직도 성경에 약속된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자신이 받은 은사의 고귀한 가치를 제대로 몰라 맹신하고 맹종하는 많은 성도들을 보면 인간적으로 통탄스럽습니다.

P연구생  비성경적인 것은 권사직도 마찬가지입니다. 권사직은 그 자격이 더 까다롭습니다. 서리집사 10년을 해야 권사 자격이 되기에 10년 동안 목사를 위해, 당회를 위해 죽도록 충성해야만 합니다. 한 번만이라도 당회의 눈에 거슬리면 모든 수고와 봉사가 물거품이 됩니다. 이러한 악덕 조항이 교회 헌법에 들어있다니 정말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헌법에서 명시한 권사의 직무는 교역자를 돕는 것입니다. 현행 교회 문화에서 ‘돕는다는 것’ 자체는 매우 부정적입니다. 왜냐하면 돕는다는 말에는 목사의 목회를 돕는다는 말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10년을 봉사해야만 권사의 추천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는데, 어떻게 목사의 목회를 돕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10년이라는 것도 어떤 성경적 근거도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물로 주신 귀한 은사에 나이 제한을 두거나 인간들이 평가하는 기준을 만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봅니다. 장로와 권사는 성경에 보면 모두 ‘신앙의 선배’입니다. 신앙의 선배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진리의 말씀으로 먼저 돌보도록 은사를 받은 분들입니다. 그것을 인위적 제도가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남녀 신앙의 선배들에게 그 직분의 사명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장로와 권사로 계급화하고 서열화한 것은 불법이라고 봅니다. 장로와 권사는 물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지체로서 어떠한 남녀차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 그리스도의 ‘신부’일 뿐입니다. 여기에 성별과 나이가 무슨 관계가 있으며, 학벌과 제도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입니까. ‘평신도-서리집사-권사-안수집사-장로-목사’의 계급구조는 개혁파 교회에서 반드시 철폐되어야 할 악습입니다.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여러분들이 살펴보신 대로 장로교 헌법은 장로, 집사, 권사, 서리집사를 차별화하여 당회의 통제와 지도 아래 두고 있습니다. 완전히 비성경적입니다. 성령께서 세우시는 교회를 오히려 헌법이 간섭하겠다는 식입니다. 비성경적 불법이며 적그리스도적 발상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모든 성도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와 성도, 성도와 성도 간에 신령한 교제를 하게 하셔서 수직적으로나 수평적으로 모든 교회가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개혁파 교회의 교회론이며 은사론이며 직분론의 원리라고 봅니다. 이것을 망각하면 인위적 조직을 만들게 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직분은 계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일’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을 직분의 명칭으로 개조하여 직책을 만들고 법제화하고 금전이 개입하는 직급을 만들어 인간이 관리하는 조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불법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에게 선한 일을 위해 선물로 주신 것이 직분인데 이를 한국 교회는 돈으로 사고파는 매관매직으로 타락해 버렸습니다. 직분을 돈을 주고 산 장로나 권사는 다시 그다음 세대에게 돈과 직분을 거래하게 만듭니다. 이 악습의 굴레에서 한국 교회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장로교 헌법 조항 하나하나를 뜯어보는 이유는 한국 교회를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무지한 장로와 권사, 그리고 집사라는 직분을 가진 성도들에게 성경적인 직분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밝히는 교회의 감독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직분은 모든 성도에게 균등하게 적용되며 각자 받은 은사대로 다른 성도를 돌보고 보살피며 자기 목숨처럼 보호해 주는 무조건적 사랑이 지배하는 원리로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인간의 정치적인 제도나 권력에 의한 지배자가 아니라, 신앙적인 은사와 사랑에 의한 봉사자, 바로 그런 분들이 남녀 장로, 남녀 집사들입니다.
목사가 진리 수호에 대한 사명 없이 자기 직업을 갖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적인 절차 따라서 안수받고 제도를 통해 자신의 신분과 생활을 보장받고 월급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생각은 성경적인 은사론과는 거리가 멀다고 봅니다. 성도들도 결국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목사가 만들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성경에 보면 성경 교사로서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진리에 대한 확신입니다. 절대적인 요건이라고 봅니다. 돈으로 흥정이 되는 대상이 성경 교사로서 목사의 자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보혜사 성령께서 준비하시고 이루어가십니다. 가령 어렸을 때부터 말씀으로 공부하게 하시며 진리 전파에 대한 자기 소명을 깨닫게 하시며 준비된 시간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진리로 양육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가 실현되는 것이 목사의 직분이지 인간의 제도를 앞세워 목사라는 직업군을 양산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잘못된 관행입니다. 나아가 모든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헌법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소원을 줘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 일을 하게 하시며 또한 먼저 은사를 받은 자들이 같은 은사를 받은 자를 ‘영입’하는 것입니다. 제도를 만들어 놓고 매관매직하는 방식으로 직분을 수여하는 것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모든 성도는 각자 받은 은사가 있습니다. 은사 없는 성도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은사는 모두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것입니다. 아무리 큰일을 하더라도 보혜사 성령의 주관하심이 사라지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일이면 과부의 엽전 한 닢도 세속의 가치를 능가합니다. 개혁파 교회의 은사론의 타락과 부패는 심각하며 목회를 했던 한 사람으로서 항상 큰 짐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부분까지 지적하면서 성경적 직분론으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은사인 직분을
계급화·차별화한 것 자체가
비성경적이며 로마 가톨릭적이며 세속정치적이다!


<187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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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됨에 대한 침묵
권징이 부족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