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는 목사들
지금까지 우리는 폴 워셔가 하나님의 법정에 기소한 현대교회의 열 가지 죄목에 대해 차례로 살펴 왔다. 오늘은 그 마지막 기소장을 살펴볼 차례다. 그의 마지막 기소장의 죄목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는 목사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쳐야 하는 목사들이 정작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워셔는 오늘날의 목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읽지 않는다거나 연구하지 않는다거나 가르치지 않는다는 표현 대신 ‘먹지 않는다’는 표현을 쓴다. 아마도 그는 다음의 말씀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다. 계시록 10장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천사의 손에서 두루마리 책을 받은 요한은 천사의 명령대로 그 책을 먹었다. 그런데 그 맛이 입에는 달고 배에서는 쓰게 되었다. 여기서 두루마리 책을 먹으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전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깊이 깨닫고, 그것을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라는 뜻으로 대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소화한 말씀을 실천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듣거나 하는 일은 비교적 쉽다. 또한, 그 말씀 중에는 그야말로 꿀송이처럼 달기도 한 내용도 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완전히 소화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거기에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희생과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천사가 두루마리 책을 삼켜버리라는 말은 사도 요한에게만 해당되는 명령이 아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모든 하나님의 종들에게 공히 적용되는 명령이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 목사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말씀을 맡은 자는 그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해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자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맡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헌신 된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디모데전서 4장 1절은 또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이 말씀은 “후일에” 즉 종말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따르지 아니하고 이 세상 풍속을 따를 것이라는 의미다.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 한다. 기본적으로 이 세대의 문화는 세속적이다. 타락한 문화다. 모든 종류의 타락에서 파멸이 시작하며, 모든 일들이 미쳐 돌아가고, 사람들은 짐승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뜻이다. 세상은 온통 제자리에서 벗어나 붕괴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바울은 또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4:6) 지금의 세상은 이성을 잃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바로 이것이다. ‘세상은 철저하게 나의 섭리 아래 있다. 배도와 박해와 온갖 죄악이 날뛰는 가운데 네가 행할 일은 이것이다. 곧 쉬지 말고 믿음의 말씀 안에서 양육을 받아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의 교훈을 제대로 배울 수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려야 한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적 지식을 의지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한다. “경건에 이르도록 너 자신을 연단하라.” 즉 경건의 훈련을 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하늘의 강한 불과 창과 칼과 같은 무기들을 부여받아 온전한 성품으로 그 무기들을 휘두르며 대적과 싸울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된다. 경건은 스스로 훈련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기도를 훈련해야 한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체계적으로 알아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 또한 대인관계에 있어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잠자리에 들 때나 아침에 일어날 때에 훈련해야 한다. 지금은 전쟁 중이다. 자신을 철저하게 훈련해야 한다. 바울은 또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8)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은 4〜5세 때부터 훈련을 시작하여 20세가 넘도록 훈련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것도 단거리 선수는 불과 9초 안에 끝나버리는 경기에 모든 것을 건다. 그것이 그들의 전부다. 그들의 영광의 순간과 그들의 삶의 목표는 그렇게 끝이 난다. 그에 비해 우리는 영원을 위해 그만한 노력을 기울일 수 없다는 말인가? 우리는 이런 세상의 시시한 일들보다 훨씬 위대한 일을 위해 지음을 받은 자들이다. 우리는 왕 중의 왕의 자녀들이기에 이 땅의 그 무엇도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 4:15) 설교자는 자기의 성숙함이 성도들에게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경건과 성품을 묵상하고 흡수해야 한다. 성경 연구에 전념하고 하나님을 아는 일에 깊이 빠져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사역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별되어야 한다. 거룩의 일차적인 개념은 구별됨이다. 저 하늘 너머 피안의 세계에서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잠시 있다가 없어질 이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하나님의 일에 빠지는 것이다. 우리의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도록 말이다. 설교자들이 성도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큼 말씀을 연구하여 성령님의 능력 가운데 설교단에 서고, ‘주께서 말씀하시기를’로 설교를 시작하여 성도들을 바로잡고 위대한 약속들과 경고를 선포하는 일이다. “설교자 여러분, 성도들을 위해 이렇게 하십시오!” 담대하게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6) 말씀을 맡은 자는 말씀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 말씀이 존경받는 곳에서는 함께 존경을 받되 말씀이 무시되는 곳에서는 그 말씀과 함께 무시당할 각오로 살아야 한다. 말씀이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대접과 존경을 받는 목사는 삯꾼이다.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효식 목사 (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부총장)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헌법(憲法) 비판 10 - ‘제14장 노회~제19장 헌법개정’의 비판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헌법(憲法) 비판 9 - 예배모범 비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