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크리스천 영성과 리더십”
2023년 새해가 되면서 한국 교회가 이전과 달라진 것은 새해에 대한 다짐과 결심이 식어버린 듯하다. 크리스천들에게 송구영신에 대한 나의 이전의 기억은 유명한 기도원이나 금식 집회에 참여하러 가던지, 아니면 특별 신년 집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기억들이 있다. 그러나 올해 신년은 새로운 신앙의 각성과 결심의 느낌이 없어 보이고 조용하다. 교회도 송구영신 예배를 형식적인 절차의 과정으로 여기는 듯하고, 신년 예배도 그냥 교회의 절기로 보내는 것 같다. 2023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크리스천 지성인들에게 갑자기 드는 생각은 긴장감을 갖고 새로운 한 해를 바라보는 크리스천 영성과 리더쉽의 필요성이다.
총신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며 교수하는 일은 참으로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이다. 25년 전 처음 강단에 설 때를 기억하면 ‘설렘’으로 며칠을 뜬눈으로 지내는 긴장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나의 교수로서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아쉬워하는 것은 너무 분주하여, 성실하게 교수로서의 직을 잘 감당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강의에 대한 진지함도 없어지고 설렘과 긴장이 없어지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총신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가?’ 하는 자성이 든다. 크리스천에게 긴장과 자성 없는 상태는 위험한 상태이다. 2023년 새해가 되면서 평소 생각하는 리더십에 대하여 몇 가지 말하고자 한다.
일전 교회 청년들과 성경 공부를 하면서 ‘리더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많은 대화가 있었지만, 리더자는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고 권면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리더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첫 번째 자질은 ‘통찰력(insight)’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처음 역사를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역사를 왜 배우느냐’라고 할 때, 역사 연구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비전과 통찰력을 준다고 강조한다. 통찰력은 사물이나 현상을 통찰하는 능력을 말하지만, 사물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고 있다. 마태복음 5장과 6장을 통해 팔복과 구제, 기도, 금식을 말씀하신 후 재물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성한 눈”(마 6:22)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성한 눈(single eye)’은 분주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초점 있는 시선의 고정을 말한다. 요즈음 청년들은 일상이 너무 분주하다. 그래서 자신의 일과 시간, 환경에 대한 시선 고정과 단순함이 필요하다고 본다. 왜 청년들이 분주하며 삶의 시선을 한 가지 일에 고정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거룩한 중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청년들은 삶의 분주함이 아니라, 거룩한 중심의 집중력을 갖고, 더 깊이 자신의 인생과 사회를 바라보는 깊은 통찰력 있는 리더가 되기를 바란다.
둘째로, 크리스천 리더의 자질은 고상함(no-bleness)이다. 비행기를 타면 하늘을 비상하는 여행의 흥분과 기대가 있지만, 실제로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여승무원의 자신의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보기에 좋다. 기내에서 승무원은 비행기가 이륙하여 착륙할 때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어떤 손님에게나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전문 직업인으로서 고상한 소임을 다하고 있다. 이처럼 고상함은 자신 스스로 자존감을 갖고 부가 가치를 높이는 고상함을 드러내야 한다. 프랑스의 격언, ‘노블리스 오빌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는 가진 자는 자신의 신분에 걸맞은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함을 말한다. 교수가 학교에서 존경받으려면, 목사가 교회에서 존경받으려면, 부모가 가정에서 존경받으려면 신분에 걸맞은 교수와 목사,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고상함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명문 가문 중 경주 최씨가 존경받는 것도 부자로서의 도덕적인 책임을 가하는 고상한 가훈 때문일 것이다.
다음으로 리더에게 필요한 중요한 자질은 정직(honesty)이다. 민족의 지도자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직은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안창호 선생이 24세가 되던 1902년 미국에 갔을 때 일이다. 당시 안창호 선생은 영어를 배우려고 미국의 초등학교에 입학을 원했다. 그런데 미국의 법에 의하면, 17세가 넘으면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기에, 교장이 보기에 외관상 15세밖에 안 되니 입학을 시켜 줄 터이니 그냥 17세라고 하라고 하였다. 이에 안창호 선생은 “나는 거짓말 하면 안 되는 사람이기에 거짓말하고는 학교를 못 다닙니다”. 교장선생이 왜 거짓말하지 못하느냐고 물으니, 안창호 선생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코리안이기 때문에 거짓말하면 안 되고, 나는 크리스천이기에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미국 초등학교의 교장은 안창호 선생의 정직에 감동되어, 법을 개정하여 ‘17세가 넘으면 초등학교 입학이 안 되지만, 단서 조항을 달아 외국인은 제외한다’고 하여 안창호 선생이 미국 초등학교에 입학하도록 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것이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 안창호 선생의 정직한 삶의 한 단면이다.
또한 리더자는 남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있는 관용(tolerance)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강한 리더자는 얼마나 남의 이야기를 듣느냐’가 하나의 척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약하다. 나의 삶을 살펴보면 남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늘 내 생각을 남에게 말을 해야 하는 목사와 교수로서의 삶이, 남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 듯하다. 강한 리더자는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사랑으로 품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사람일 것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그 수준이 결국 영향력 있는 강한 리더자의 자질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리더에게 필요한 또 다른 중요한 자질은 열정(passion)이다. 일전 출판된 베스트셀러 중 ‘성공을 말하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버핏과 빌 게이츠는 성공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성공은 부, 출세와 명예가 아니라 일에 대한 열정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들이 말하는 열정은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만이 아니라, 버핏처럼 자신의 재산 99%를 사회에 환원하는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살려는 열정이 이들의 리더십이 존경받는 것이라고 본다. 이처럼 리더로서의 자질은 삶과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자라야 한다는 지적은 우리가 주목할 만하다. 버핏과 게이츠는 분명 이 시대의 가장 존경받는 리더이다.
오늘날의 교회를 보면서 교회와 크리스천이 너무나 이기적이고, 심지어는 주관적인 독단주의로 가득 차서, 교회가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활을 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복음과 경건의 가면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그럴 리가 없지만 혹시 교회와 크리스천이 세상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흉기가 아닌지 조심스럽게 우리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복음은 단순한 본질에 대한 문제이다. 예수님의 삶과 생각은 아주 단순하셨다(마 4:17). 하나님 나라(하나님의 교회)에 비전 그것밖에 없으셨다. 우리의 교회와 크리스천은 너무 분주하고, 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하나님 나라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른다. 요즘 들어 스스로 자주 묻는 나의 질문이다. “너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느냐,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느냐!” (막 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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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Knox Kwon (신앙과 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총신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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