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선교사 언더우드의 『그리스도신문』 의 성격
언더우드에게 신문 발행의 성격과 특징은 지식을 통한 계몽과 교육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언더우드에 의하면, “짧은 시간 안에 보면서 학문과 지식과 문견을 넓히려 하면 신문 같은 것이 없다. 문명한 나라 신문에 대해 말하자면, 영국에는 신보가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미국은 신보가 마을마다 있고 큰 동네마다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문을 구독한다면 가히 큰 사기(史記)가 되는 것이다. 문명한 나라가 되어 갈수록 신문은 점점 많이 발행된다.” 누가 와서 우리에게 묻기를 “(지금과 같은) 이때에 조선에게 가장 요긴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들이 가장 먼저 대답할 것은 ‘지식’이다. 언더우드에 의하면, “조선의 백성들은 재주가 없는 것이 아닐 뿐, 아는 것이 없어서 무지한 것이니 그 마음이 빈집과 같다”고 언급하였다. 언더우드는 신문이 지식을 얻는 데 중요한 하나의 수단이 되므로, 신문이 조선 백성들에게 만물의 이치를 널리 펴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았다.
언더우드는 신문 기사의 내용을 교회 관련 기사만 실은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필요한 일반 지식을 주려고 신문을 발행한 것이다. 실제로 1897년 연간 신문 내용을 보면 교회 통신이 74회, 공업진흥에 관한 논설 100회, 농업개량에 관한 논설 99회, 세계소식과 일반교양이 105회였다. 교회 통신은 4분의 1에 불과하였다. 이처럼 이 신문이 국민들에게 유익한 기독교 이외의 기사가 많아서 정부에서 이 신문 467부를 구입하여 정부 10개 부처와 367군에 배포하였다고 전한다. 이는 기독교에 대한 선의적 태도라기보다는 서양문명을 일반 국민에게 알리려는 계몽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언더우드 신문의 특이한 점은 조선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신문의 기사가 실용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즉 농리편설과 공장편리설과 조선의 나랏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과 외국 백성들의 하는 일과 타국에서 일어날 일을 기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더우드는 『그리스도신문』의 성격으로 지식을 통한 계몽이 조선 백성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언급하였다. 당시 다른 구한말 신문도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한국 근대화의 계몽에 기여하였지만, 언더우드의 『그리스도신문』은 지식과 문명의 진보로 백성의 계몽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러나 언더우드는 조선 백성들이 다만 사농공상과 지식과 학문을 힘써 배우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대적 상황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성심으로 대한의 인민을 위하여 이렇게 하는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은가”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조선 백성 계몽의 필요성에서 주장한 것이지만, 언더우드는 당시 서양 선교사들이 갖는 편견적 견해 즉 조선 나라와 백성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면이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고 본다.
다른 한편 언더우드는 신문을 통해 백성들의 계몽과 더불어 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을 강조한다. 언더우드는 학문 배우는 것이 한국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대한에 들어온 지 여러 해가 되었으며, 대한의 인민들과 서로 가까이 지내며 친하게 지내기도 하였다. 대한 전국의 사람 사는 풍속과 농사하는 것과 공업 하는 것과 장사하는 것과 학문 배우는 것과 정부에서 나라 다스리는 일 등을 모두 살펴보니, 대한 사람이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이 없어서 잘 모르는 것이었다.” 언더우드는 중국의 문명과 강대함을 언급하면서 한국도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8가지 제안 중에 학교 설립과 문명의 법을 배우기를 4번째 안으로 제안하고 있다. 언더우드는 학교 설립이 나라의 문명화에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신문 기사에 자주 인용하고 있다. 그는 조선과 다른 해외 나라를 비교하면서 각 지방에 학교를 세워, 신분이 어떠하던지 교육을 하면 사람들이 세상 이치를 알게 되는 문명으로 가는 길이라고 보았다.
선교 사역의 일환으로 교회가 학교 설립에 기여한 사실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구한말 선교사들이 세운 기독교 학교가 한국 근대화와 개화기 계몽 운동에 산실의 역할을 하게 되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세워진 기독교 학교로는 서울의 배재, 이화, 경신, 배화 등을 비롯하여 평양의 숭실, 숭의, 송도의 한영서원, 호수돈 여학교 등 각 지방에도 있었다. 『그리스도신문』을 보면 실제로 교회의 학교 설립의 노력은 대단한 일이었다. 언더우드는 교육의 기회는 남녀 구별 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이 세상에 있는 큰 나라 곧 부강한 나라에 대해 말하자면 (그 나라들은) 백성들을 의무적으로 공부시킨다. 그 나라의 법은 남녀 구별 없이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배워야 할 것들을 밝히 배우게 한다. 이제 앞으로 조선에서도 이와 같이 되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준비에)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이며, 우리에게 있는 기틀(여러 가지 요건들)을 다 이용하여 지식을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언더우드의 『그리스도신문』을 분석해 보면 아주 흥미로운 점이 두드러진다. 『그리스도신문』 발행의 취지와 성격을 보면 구한말 다른 신문과 달리 그는 나라와 백성을 위한 신문 창간의 역사적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언더우드는 신문이 백성들에게 지식을 얻는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 되고 결국 이것이 견문을 넓히는 문명 진보에 유익하다고 보았다. 『그리스도신문』이 당대 다른 구한말 신문과 다른 것 중의 하나는 독자층을 일반 서민과 양반 유생을 대상으로 창간한 신문들과 달리,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신문을 발행하여 문명개화 운동을 강조하고 백성들의 학식과 견문을 넓히는 그리고 사회적 담론의 장으로 역할을 감당한 신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그리스도신문』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초기 한국 선교 사역이 의료선교, 교육 선교를 강조하는 것에 치우친 면이 있는데, 언더우드는 신문의 필요성과 내용을 통해 신문과 언론이 선교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신문』의 역사적 의미를 평가해 보면 먼저 정부와 관계 그리고 다른 종교와의 갈등을 완화하는 데 신문이 긍정적으로 기여한 점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당시 신문을 통해 일반 대중들의 한글 보급에 앞장선 점도 한국 근대화에 공헌한 것으로 볼 수 있고, 해외 다른 나라의 정치와 사상 문화를 신문에 소개함으로 서양의 근대화를 알게 하는 한국인의 개명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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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Knox Kwon (신앙과 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총신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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