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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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31 21:4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배신인가? 정의인가?


재작년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전(前) 대통령 국회 본회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지금까지 전직 대통령에 관한 뉴스가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지난 연말부터는 전전(前前) 대통령 소식까지 가세하면서 전직 두 대통령 관련 뉴스는 아마 방송 사상 가장 긴 저녁 ‘일일연속극’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사람은 503호 수인(囚人) 번호를 이미 달고 있고 또 다른 한 사람도 그 번호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나라 바로 세우는 일이 다름 아닌 최고 통치자에 대한 구속과 수사 과정이라는 사실이 씁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국민에게 ‘정의로운 국가’에 대한 여망(輿望)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국가 이념이고 목표이다.
그런데 역대(歷代) 부패한 권력이든 성공한 권력이든 한결같은 뼈아픈(?) 진실이 근래 두 대통령의 수사 과정에도 또 드러난다. 바로 최측근들의 배신(背信)이다. 믿음과 신뢰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저버리는 일이 또 발생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믿었던 사람이 볼 때는 배신이지만, 반사 이익을 취하는 사람에게는 용기 있는 행동일 것이다. 인간의 마지막 도리를 저버린 배신의 칼날인가? 불의를 끊는 정의의 검인가? 답을 찾는다는 게 무색한 경우가 많다. 성경의 인류 역사는 배신으로 시작한다. 아담과 하와의 창조주 배신, 가인의 형제애 배신, 아브라함의 아내 두 번 배신, 사울왕의 배신, 다윗의 배신, 압살롬의 배신, 솔로몬의 배신, 히스기야의 배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들의 줄 이은 배신, 예수님 제자들의 배신, 아시아 교회의 바울 배신 등 성경에 나타난 배신의 사례는 무수하다.
하지만 배신으로 보이는 행동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단순하지 않다. 그런데 성도들에게 배신의 심각함은 창조주이신 절대자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반역에서 그 본질을 찾아야 한다. 기독교인에게 배신은 인간에 대한 신의를 저버린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성경적 정의(正義)를 고민하는 성도들에게 교회 안팎에서 일어나는 이른바 ‘배신’과 관련된 사건을 볼 때마다 혼동스럽다. 해결의 실마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섭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는 이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난제(難題)임을 재차 확인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확증할 수 없다면 배신과 정의의 문제는 정신적 혼란만 가중할 뿐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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