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7-09-08 19:3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앎과 모름


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자왈 유 회여지지호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논어 위정의 계속이다.

“공자가 말했다. 유(자로)야 너에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줄까?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안다는 것이야.”

유는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성은 중(仲)이고 자는 자로(子路)다. 그는 제자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다. 자로는 용맹한 것을 좋아해서 아마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도 억지로 아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공자가 자로에게 앎의 도리를 가르쳐 주려 한 것이다. 그 내용은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끝까지 알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을 속이는 폐단은 없게 된다. 또 스스로 알아가는 데도 해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이러한 방법으로 앎을 구하게 되면 알 수 있는 이치(可知之理)도 생겨난다.
앎의 기본은 아는 것을 확실히 아는 것으로 하고 모르는 것은 확실히 모르는 현실 그 자체를 아는 데 있다. 내가 아는 것과 내가 알지 못하는 사실 그 자체를 아는 것 그것이 아는 것이다.
‘知之’는 ‘(계속) 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앎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무언가를 경험하거나 연구하는 과정에서 계속 알아지는 것이 있으면 그 이면에는 얼마든지 모르는 것이 있다. 그래서 앎과 알지 못함은 동전의 양면이다. 다 알면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없게 되고 다 모르면 알 방법이 없다. 앎과 알지 못함이 있어야만 앎은 성립된다. 이 과정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필연적으로 계속된다.
그런데도 자로는 용맹함만을 내세워서 매사에 용맹으로 대처한 것이다. 이것은 용맹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용맹만을 내세운 행태다. 적어도 자로는 용맹과 용맹하지 않은 것을 모두 실천할 수 있을 때 용맹과 용맹하지 않음을 알 수 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스도인에게서 앎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에게 앎의 대상은 그리스도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앎이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다음 단계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게 된 그만큼은 자기 자신이 안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야 한다. 안다고 고백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자신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고 있는 부분만큼은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반드시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르는 부분이 있게 된다. 성경 속에서 그리스도가 하신 일은 우리가 알 수 있는 일도 있지만 모르는 부분의 일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모르는 일들에 대하여 반드시 모른다고 해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르는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그 순간 그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모르는 부분이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의 선한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 이제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에 대하여 솔직해지도록 하자. 그리스도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실천하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하고 완수하신 것을 우리가 알기는 하지만 우리가 약한 존재이기에 그분처럼 실천하지 못한다고 핑계대지 말자. 이러한 핑계 대신에 차라리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지 않는 것이 솔직한 모습이 아닌가. 선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를 안다고 할 때 그 말에 책임지려 할 것이다. 사람이 모르던 분야를 조금씩 깨우치고 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우리가 모른다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에 대해서 조금이라고 아는 것이 있을 때만 성립되는 말이다. 아마도 모른다고 말하는 데는 일차적으로 용기가 필요하고, 호기심과 궁금증, 관심과 열정, 도전과 투지, 또는 이와 반대로 절망과 포기, 무관심 등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모른다는 것의 유일한 해결책은 아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정말 순진하고 진지한 모름은 앎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 그러니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우리 그리스도를 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하여 진지하고 솔직하게 모른다고 하자. 그래야 그리스도를 아는 곳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선한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은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고 모른다고 하는 두 사태 사이에서 삶일 것이다. 그러니 그리스도에 대한 앎과 모름을 함께 맛보며 소박하고 진솔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떻겠는가.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니체가 본 언어: 이해는 바로 오해다!
배우며 생각하고 생각하며 배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