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공자의 배움 좋아하기
子曰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者也
자왈이의호 오미견능견기과이내자송자야.
子曰十室之邑 必有忠信 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자왈십실지읍 필유충신 여구자언 불여구지호학야.
『논어』 제5장 「공야장」의 마지막 구절이다.
공자가 말했다. “이미 다 되었도다. 나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서 (마음속으로) 스스로 자책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공자가 말했다. “열 가구가 사는 마을에는 반드시 나와 같은 충신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배움을 좋아하는 것만큼 (그만큼 배움을) 좋아할 사람은 있지 않을 것이다.”
공자는 그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알아서 그것을 고치겠다고 자기 자신과 다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으면 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이런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그 당시의 시대 분위기에서 끝난 일인 것처럼 여겨졌다. 공자는 군자라면 당연히 자신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가 재판관이 되어 그 잘못의 경중을 따지는 사람의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따질 줄 아는 사람이 충신이었다. 충은 왕(나라)에게 충실하고 위에 있는 사람이나 아랫사람들에게 두루 믿음을 얻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열 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만 되더라도 어느 정도 있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공자의 입장이 단호하였다. 그는 배움을 사랑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으려 하였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점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을 따를 수 없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단 한 사람 예외가 있었다면 자신의 제자인 안연 한 사람 정도일 뿐이었다.
공자는 배우고 또 배웠다. 그는 결코 날 때부터 사리를 아는 천재형의 인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옛것(학문의 세계)을 배우고 익히는 데 빨랐고 이러한 배움을 찾고 또 찾았다.(我非生而知之者也. 好古敏而求之者也. 아비생이지지자야 호고민이구지자야. 「述而」 7편)
한 번은 오나라 태재(大宰)가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에게 그의 스승 공자가 다재다능한 성자인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泰伯」편). 이에 자공은 당당하게 공자는 하늘이 풀어놓은 성인이라고 하면서 능력이 많다고 인정하였다. 후에 이 말을 듣고 나서 공자는 자신이 어려서 미천했기에 많은 비루한 일들을 능히 할 수 있어야 해서 배운 것이지 자신은 다재다능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고백하였다. 즉 그가 성인처럼 보이고 다재다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오직 배우기를 즐겨할 뿐이라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이렇게 배움을 통해 인을 찾아 실천하고 예를 확장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천하를 평안하게 하려는 데 헌신한 인물이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공자의 가치관에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 첫째는 자신의 잘못을 알아서 자신이 자신을 심판대에 세우는 일이라 하겠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 많은 사람이 명백히 자신의 잘못인데도 불구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에 변명으로 일관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말씀에 준거하여 자신의 잘못을 자책하고 따지면서 고쳐나가기를 실천해야 한다. 이렇게 홀로 판단력과 실천력을 길러갈 때 그(녀)는 서서히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고 실존적 존재로 성장해 갈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배워야 할 가치관은 끝없이 배우기를 즐기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실천하기 위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끝없이 배워야 한다. 배움의 내용 중 하나가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일 것이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한 번 사는 인생에서 하나님의 의를 따라 충성하고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일평생 배워가도록 하자. 공자는 자신의 인생 본분을 다 하기 위해 충성과 배움에 몸을 바쳤다고 한다. 영생을 얻은 그리스도인이 죄의 문제에 스스로 단호하게 대처하면서 하나님의 의를 따라 충성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의 배움을 실천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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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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