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루이스(C. S. Lewis)와 쉐퍼(F. Schaeffer)의 예정론 대화
이 시대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두 변증가가 있는데, 그는 바로 루이스와 쉐퍼이다. 이 두 변증가를 비교하면 유사점과 차이점이 흥미롭게 드러난다. 두 사람 모두 고전에 매료되었고, 암 투병에 대한 개인적 체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쉐퍼는 안수받은 장로교 목사였고, 루이스는 성공회 교단의 평신도였다. 쉐퍼는 스스로 절대 금주를 지켜왔던 근본주의자였지만, 루이스는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청교도의 고리타분함을 비판했다. 쉐퍼는 최전선에서 사역한 블루칼라 복음 전도자였지만, 루이스는 옥스퍼드의 화이트칼라 계층 교수였다.
먼저 쉐퍼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쉐퍼는 두 가지 핵심적인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 첫 번째 문제는 분쟁과 혼란에 빠지지 않고서도 의와 성경의 진리를 견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문제는 인생에 대한 결정론적 시각이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결정론적인 강조는 강의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영역에서도 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간의 관계는 쉐퍼 부부에 있어서 핵심 주제가 되었다.
쉐퍼는 자신이 개혁주의 기독교 전통에 서 있음을 명확히 했다. 쉐퍼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라는 제목으로 해설 강의를 한 적이 한 번 있었다. 이 강의에서 예정론과 인간의 자유에 대한 쉐퍼의 신념이 가장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쉐퍼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따라 하나님의 주권을 설명하려면, 인간의 영원한 운명을 포함해서 인생의 모든 세부 사항까지 완전하고 무조건적으로 예정되었음을 포함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쉐퍼는 전적이며 무조건적인 예정론을 인정하긴 했지만, 또한 기독교가 결정론적이며 숙명적인 체계가 아님을 강조했다. 하나님은 자유롭게 창조하시고 결정되지 않으시는 존재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역시 결정되지 않았으며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역사와 인간은 결정론의 수레바퀴에 얽매이지 않는다. 한편 쉐퍼에 따르면 성경은 두 가지 교리 모두를 분명하게 가르친다. 그는 예정론과 자유라는 쟁점을,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전적인 통제로, 다른 쪽에서는 인간의 참된 자유와 중요성이 하나의 ‘완벽한 균형을 갖춘 모빌’로 보았다. 성경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양자를 균형 잡힌 병행 관계로 인정한다.
쉐퍼와 달리 루이스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종류의 피조물이 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았다. 물론 자신이 마음대로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루이스는 하나님도 홀로 하실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분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성품 형성 과정에 협력하는 것을 필요로 하신다. 그리고 루이스는 인간 자유의 중요성을 위협하는 잠재적인 논리가 있음을 간파했다. 예정과 예지와 관련하여 설명하기로 하나님이 내일 당신이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먹을 것을 알고 계신다면, 당신이 그 샌드위치를 안 먹게 되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이 당신이 내일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먹으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계시기 때문에 당신은 내일 땅콩버터 샌드위치 외에 다른 것을 먹을 수 없다고 하면, 이는 자유의지론적 자유라는 개념, 즉 반대되는 것을 선택할 능력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인다. 정확히 말해서 루이스는 예지나 예정을 믿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있었다. 루이스는 피조물이 간구하며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장래에 일어날 모든 것을 하나님이 결정해 놓으셨다고 믿지는 않았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신비를 푸는 데 필요한 능력이나 적절한 안목이 없기 때문에, 루이스는 자유의지와 예정론에 관한 모든 논의는 ‘정말로 무의미한 질문’이며 ‘어떤 구체적인 경우에도 그러한 질문은 전혀 실용성이 없다’고 믿었다.
쉐퍼와 루이스의 구원론을 개괄하면, 그들의 논의에서 상당한 정도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찾아볼 수 있었다. 쉐퍼는 속죄의 대속적인 형벌이라는 관점을 지지하면서 칭의와 면죄에 논리적 강조점을 둔 반면, 루이스는 속죄에 대한 변혁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시종일관 능력 부여와 인간의 협력을 강조했다. 쉐퍼는 구원의 근거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예정이라는 영원한 섭리에 두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중요하고 제1 원인의 선택을 내린다는 점을 믿었다. 비슷하게 루이스는 자유의지론적 자유를 받아들였으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는 상당히 다른 관점을 견지했다. 루이스는 전통적인 개혁주의 가르침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의 선택을 중요하게 여기시면서 일어날 모든 것을 계획하신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과 신적 인과성의 정확한 상호관계는 제한된 인간의 관점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루이스와 쉐퍼의 자유의지에 대한 논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루이스는 자유의지론적 자유를 받아들이는데,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의 자유와 논리적으로 맞지 않았다. 루이스는 예정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면 행위자로서 인간의 역할이 배제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 이 두 가지를 긴장하며 양자를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동의하기가 어렵다. 다른 한편 쉐퍼는 예정론을 완벽하게 균형 잡힌 모빌이라고 설명한다. 즉 인간은 자신의 의식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지만, 인간이 의식할 수 없는 곳에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자신의 전적 주권으로 예정하신 것이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루이스와 쉐퍼의 자유의지와 예정에 대한 주장은 논쟁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쉐퍼는 인간의 선택이 자유롭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예정이 인간과 역사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고 본다. 반면 루이스는 인간의 자유를 너무나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의 예정을 암묵적으로 부정하는 결과를 야기하는 면이 있다. 더욱 우려할 바는 하나님의 전지의 입장에서 보면 루이스의 예정은 얼마나 타당한지를 의심하게 한다.
성경적인 교리에서 예정은 인간에 하나의 신비로운 단추이다. 그러나 우리가 설명하기 어려운 논쟁적인 주제이지만, 예정은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성경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을 부인하기 어렵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그분 마음의 원대로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뜻을 따라 자유롭게 장차 될 일을 불변하게 정하셨으나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죄를 만드신 자가 아니요, 위법이 피조물의 의지 속에 주어진 것도 아니요, 또한 자유나 자유 의지를 빼앗긴 것도 아니고 오히려 확립되었을 뿐이다.” (본고에서 인용하는 루이스와 쉐퍼의 대화는 다음의 도서를 참고함을 밝힌다. Burson, Scott & Walls, Jerry L. 『루이스와 쉐퍼의 대화』. C. S. Lewis & Francis Schaeffer. 김선일 역. 서울: IVP,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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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Knox Kwon (신앙과 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총신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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