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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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3-09 20:5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어느 트렌스젠더 성도의 피눈물이 남긴 기도


트렌스젠더, 때리면 치유되나요?

성 소수자 이해 없는 목사의 치유 상담…귀신 내쫓는다며 황당 강의

아버지가 목사인 연희(가명)는 지난해 가을 다짜고짜 귀신 들렸다는 이유로 아버지한테 속수무책으로 맞았다. 아버지 옆에는 또 다른 목사가 각목과 맨주먹으로 때렸다. 정신없이 맞은 후 거울에 비친 눈은 터진 핏줄로 핏빛으로, 눈과 코 주위는 검은색으로 멍들어 있었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본인을 여성이라고 여기는 트랜스젠더(성전환자)인 연희는 성인이 되어 성전환 수술을 결심하고 목사인 아버지께 말하자 아버지는 귀신이 들렸다고 판단, 치유 센터를 운영한다는 대구의 김기환 목사에게 그리고 진주의 정호석 목사에게 데려갔다. 진주의 영성 치유 센터를 운영하는 목사에게 맡겨진 연희는 그곳에서 끔찍한 일을 겪는다. 대구의 김 목사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연희에게“성서에 너 같은 것들을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적혀 있으니 네가 맞는 것에 불합리함이 없다”고 하는가 하면, 가위를 들고 와“고추, 그거 어차피 필요 없으니 잘라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귀신을 쫓아낸다며 연희의 단전·관자놀이·눈 등 신체 급소를 눌렀고 악한 영이 나가야 한다며 바닥에 머리를 찍는가 하면 주먹으로 뺨과 얼굴을 때렸다. <중략> 연희는 지금 혼자 생활하면서 성 소수자 자립을 돕는 단체의 도움으로 정신과 상담도 받고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그는 트랜스젠더의 삶을 선택했다기보다 이렇게 태어났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연희의 아버지 목사는 경찰 조사를 받고 가정 보호 사건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중략> 최근 동성애치유상담학교를 개소한 이요나 목사(홀리라이프 대표)는 <뉴스앤조이> 기자와 대화에서“게이나 트랜스젠더 문제는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동성애자를 이해하고 성경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곳에서 치유 사역을 해야 한다. (진주 사랑의교회처럼) 치유 사역하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들은 무당만도 못한 사람들이다. 동성애가 귀신인 것처럼 말하는 한국교회가 문제”라고 했다.
<자료출처: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2241>

기독교의 이름으로 종교지도자들이 저지르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대부분 참혹한 피해를 본 희생자를 낳게 마련이다.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무지, 더 정확히 말하면 성경 진리에 대한 무식함이 초래하는 성도들의 피해를 보면 뭔가 타인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입장에 무책임하게 방관하고 있는 듯하여 더욱 부끄러워질 때가 많다. 동시에 무지하고 나약하며 온순하여 목사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성도, 그것도 감당하기 힘든 개인의 고통을 견디고자 몸부림치며 지도자인 목사에게 의존하는 자를 속이고 정죄하고 몸을 망치고 재물을 갈취하는 종교지도자를 빙자한 사기꾼들에 대한 분노도 더욱 치밀어 오른다. 종교적 권위로 무조건적 맹종을 강요하는 파렴치한 종교지도자들은 일반 성도가 아닌 이제는 자기 약점을 숨기면서 죽지 못해 견디는 그야말로 ‘그리스도의 절대 자유를 원하는 소수 약자’ 혹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인하고 그의 은총을 생명처럼 기다리는 어린 자’인 힘든 지체에게까지 교권의 이름으로 만행을 저지른다.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창 3:5)는 사단의 유혹으로 하와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이후,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셔야만 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는 것을 성경 진리를 통해 확실하고 분명하게 전달하고 인도할 자가 바로 기독교 지도자들이어야 한다. 진리 앞으로 인도하는 데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자가 교회 지도자들인데, 어떤 지도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서 절대자 재판관의 노릇을 하려고 한다. 열심과 열정 이전에 자기 자신을 우선 돌아보는 필터링(filtering)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누가 귀신에 들렸는지, 정상과 비정상이 누구인지 내가 심판자가 되어 판정하려는 것은 아닌가? 유대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사용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일이 나의 행동과는 무관한 일일까? 천사 같은 말과 겸손으로 대하면서 탐욕과 지배의 권력을 키우는 일이 나와는 무관한 것일까? 3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회계 업무를 보던 가롯 유다가 하룻밤 사이에 배신한 사건이 머나먼 남의 일일까? 1년 8개월 동안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준 바울 사도에 대한 고린도 교회의 배척과 배신, 이것 또한 일회적 사건일까? 마지막 날 모든 피조 세계를 사단의 권력에게 맡기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현재와는 무관한 일일까?
성경은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의 위대하신 프로그램을 분명하게 보여주신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과거 사건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심판과 긍휼을 하나님 자신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진리로 사용하신다. 어떤 자매의 질문처럼, ‘오늘 밤 내가 욥처럼 사단에 맡겨져 극심한 고통 가운데 절규하다 결국, 가롯 유다처럼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하나님께 버림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나요?’ 지금 나의 복음을 향한 열정이 죄가 나를 속여서 진리를 배신하고 하나님을 저주해 버리는 과정으로 향하고 있지 않다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공적 신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그것이 나의 이기적 욕심을 포장하는 갖가지 위선의 탈을 만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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