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월호 2주기, ‘하나님이 너무 밉습니다’
세월호 참사(2014년 4월 16일, 295명 사망, 9명 실종) 2주기를 앞둔 4월 12일, 감리교신학대학교·장로회신학대학교·총신대학교·한신대학교 학생들 250여 명이 공동으로 기도회를 열었다. 그런데 기도회에는 미수습자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 씨가 참석했다. “단원고 2학년 2반 허다윤 엄마입니다. 아직 세월호에 사람이 있습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홉 명의 미수습자가 있습니다. 그중에 한 명이 제 딸입니다. (……) 대부분 많은 부모님들이 참사가 일어났을 때 한 달 이전에 아이를 찾아서 아이를 장례 치르고 보내 줬습니다. 저희는 아이를 못 찾았기 때문에 단 하루도 추모를 할 수 없고, 아직도 세월호 속에 사람이 있다고 많은 사람한테 알리고 있습니다. (……) 인양이 안 될까 봐 너무 두렵고 무섭습니다. 그리고 배가 올라와서 거기에 다윤이가 없을까 봐 더 무섭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그런 기도를 합니다. 제가 길 잃어버린 한 마리 양 같다고. 하나님은 세월호 속에 있는 아홉 명을 한 명 한 명 안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 정말 너무 지쳐서 너무 힘들어서 다윤이한테 너무 미안해서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지옥 같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밉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아이가 죽은 것도 억울한데, 왜 그 마지막이 다윤이가 됐는지, 하나님이 너무 밉습니다. 도와주세요, 제발. 아홉 명의 미수습자를 꼭 찾을 수 있도록, 온전한 선체가 인양될 수 있도록, 유실 없이 인양될 수 있도록, 여기 오신 많은 분들이 꼭 기도해 주시고 관심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자료출처: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2931>
앞의 기사는 세월호 희생자 304명 중 미수습자 허다윤 어머니의 애절한 부탁과 간절한 바람, 그리고 통한의 기도를 담고 있다. ‘하나님이 너무 밉습니다’는 그의 애끓는 탄식과 기도는 더 이상 무슨 말을 보탤 수 없게 한다. 이러한 피 끓는 절규가 어찌 다윤이의 어머니뿐이었으랴! 304명 모든 이들의 어머니가 다윤이의 어머니와 같은 마음이었음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매일 매일 2년 전 4월 16일을 살고 있다는 어머니의 말은 2년 전 딸이 탄 배가 침몰해 가는 것을 그냥 지켜보기만 한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기 무능에 대한 비통한 자책감이 뼈저리게 사무치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전능자 하나님을 신앙하는 한 사람으로서 어디서부터 무엇으로 이 의미를 정리해가야 할지 이 장면을 서술해보려는 것, 이 자체가 큰 압박이 되어 되돌아온다.
이 참사를 떠올릴 때마다 나의 죄 없음을 전제하고 특정한 누군가를 지목하여 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공개 재판에 회부하려는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 신앙인의 바른 처사임이 아님을 알면서도, 왜 이렇게 나는 304명의 죽음에는 자유로운 듯 분개하며 참사 관련 특정인들을 정하여 정죄하고 비난하고 욕하는가? 형제의 눈 속에 든 티는 반드시 찾아내려 하면서도 자기 눈 속에 저렇게 선명하게 박혀 있는 들보는 왜 볼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보려고 하지 않으려는 것인가? 볼 수 없다면 자기 무지의 늪에 빠진 채로 하나님의 엄격한 문책이나 심판을 이미 받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며, 제 눈의 들보를 보고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이미 심판자인 하나님께 대적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너무 밉습니다’라는 다윤이 어머니의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편이 되어서 자신을 억울하게 하는 모든 자들을 심판하고 멸망시켜 원수를 갚아 달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다윤이 어머니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기도 어렵지만, 이 애달픔을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심정으로 고백하며 기도할 수 있느냐가 더욱 자신을 곤혹스럽게 한다. 나 자신의 일처럼 공감한다는 태도는 어쩌면 과해도 너무 과한 동정심이다. 어머니의 심정으로 봐도 신앙인의 양심으로 봐도 ‘죽지 않고 나는 왜 지금 이렇게 살려놓았으며 여기에 이렇게 살아있는가’하는 궁금증만 점점 더할 뿐이다. 아기 예수님 당시 헤롯의 분노로 인해 베들레헴과 그 일대의 모든 두 살 아래 아이들과 아기들이 죽어갈 때 무슨 말이 가능했을까? ‘하나님 너무 밉습니다’하며 다윤이 어머니의 말을 반복하는 수밖에 다른 말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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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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