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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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1-17 21:0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벌써 죽은 이유, 아직도 산 이유: 심판주 하나님


우리는 3년 전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의 고통을 아직도 겪고 있다. 최근 세계 곳곳에는 테러범들의 잇따른 폭탄 테러와 총기 난사 등 무차별적 공격으로 희생자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의 경우 2016년 희생자 수가 약 1만70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하루 평균 45명의 목숨이 사라진 셈이다. 수없이 쏟아지는 세계의 뉴스 가운데 목숨을 앗아가는 뉴스가 끊이질 않는다. 자연재해로 인한 수까지 고려한다면 재난과 참화는 해석 대상이 아니라 외면하거나 회피하고 나한테 일어나지 않은 다행스러움에 안도하는 것이 나을성싶다.
이러한 상황에서 창조주 하나님, 우주 만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심경은 더욱 힘들어진다. 섭리(攝理)에 대한 우리 사전의 정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뜻’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이 간단한 정의를 받아들이고 보면, 문제의 심각함은 하나님의 뜻을 말하면서 우리는 인간의 뜻이나 기대 속에서 성급하게 성경의 하나님을 헤아려 짐작한다는 데부터 시작한다. 성경 진리에 충실하지 못한 결과가 병발하는 참화를 보면서 건전한 신앙으로 양육 받아 성숙하기보다 있던 믿음도 한순간 매몰당하는 신세로 치닫는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1600여 년 동안 성경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진리를 무시해 온 결과, 성경에서 밝히는 신의 존재를 점점 오해하고 신을 저주하거나 ‘믿어 봐야 소용없다’는 식의 필연적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철학자 니체의 말 ‘신이 죽었다’는 선언이 전 지구적으로 확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정말로 현실이 되고 있다. 참화 이후 더 힘든 것은 창세전부터 존재하시며 모든 일을 정하신 대로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한 성도로서 이에 대한 기독교적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함부로 구성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생명의 권한이 나 자신에게는 없는 한 피조물로서 다음 물음을 피해가기 힘들다. ‘나는 왜 아직도 살아남아야 하지?’

참화와 재난으로 2016년에도 전 지구에 남겨진 두렵고 아픈 기억과 상흔은 지금도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오래전 여호와 하나님은 첫 창조물을 모두 심판한 적이 있다. 노아 시대의 대홍수 심판 사건이다. 노아를 비롯한 남겨진 8명 가족은 아마 수없이 자문했을 터, ‘왜 우리만 살아남게 하셨지, 왜 나를 살려놓았을까?’ 홍수 후 300여 년을 더 살았던 노아는 누구보다 더 진지한 물음을 하나님께 물었을 것이다. 시조(始祖) 아담이 받는 ‘삼대언약(三大言約, 창 1:28)’을 기억하며 동시대 수십억 혹은 수백억 인류의 주검을 보면서 노아는 앞으로 전개될 자손, 땅, 통치의 삼대언약이 어떻게 될 것인지, 하나님 앞에서 깊은 묵상 속으로 들어가 고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언약하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성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 노아는 이것을 또 확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물었을 것이며 그 답을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조금씩 깨달아 갔을 것이다. ‘아,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살려 주셨던 것이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하고 계셨을 때 두 가지 재난이 일어났다. 하나는 로마 제국의 총독으로 파견된 총독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이 제사를 드릴 때 그들을 죽였다. 그래서 그들의 피가 제사 드리던 본래의 피에 자신들의 피도 섞이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유대인들은 제사를 드리다 죽은 자들이 부정한 피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하는 인과론적 상식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죽은 갈릴리 사람들이 다른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고 질문하시면서,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3)고 교훈하신다. 그 무렵 또 다른 재난이 일어난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열여덟 명이 치어 죽었다. 이에 대해서도 예수께서는 죽은 사람들이 다른 예루살렘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고 반문하시고,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5)고 엄하게 교훈하신다. ‘왜 나는 살아남아 있도록 한 것일까?’ 오래전 이미 모든 것을 누려보고 끝없이 추락했던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을 통해 전해진 진리의 말씀을 다시 고민해야 할 터이다.

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14)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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